
금융위원회가 녹색·전환금융 790조원 공급 로드맵을 발표했다. 금액은 특정됐으나 이 규모가 누적 기준인지 연간 기준인지, 어느 기간에 걸쳐 공급되는지는 함께 제시되지 않았다. 공급 주체를 정책금융기관과 민간은행이 어떤 비율로 나누는지도 확정 전이다.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의 배분 비율 역시 제시되지 않아, 고탄소 설비 교체와 공정 개선에 직접 들어가는 몫은 현재로선 계산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이와 별도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감축경로와 전환계획을 어느 수준까지 요구하는지, 기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제재가 따르는지는 공개 범위 밖이다. 적격 기준이 헐거우면 기존 여신의 이름만 바꿔 다는 결과가 나올 수 있고, 반대로 요건이 지나치게 촘촘하면 자금이 애초부터 탄소 배출이 적은 사업에만 몰릴 수 있다. 로드맵의 실효성은 이 두 극단 사이 어디에 선을 긋느냐로 갈린다.
은행권 대응은 하반기부터 윤곽이 잡힌다. IBK기업은행은 가이드라인 발표에 맞춰 2026년 하반기 전환금융을 시행할 예정으로 파악된다. 이 은행은 2025년 발행한 녹색채권 1500억원을 풍력발전과 하수처리 등 친환경 인프라 사업에 전액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전환·녹색금융의 총 지원 규모와 수혜 기업 수 같은 정량 지표는 3월 10일 기준 대외에 나와 있지 않다.
국내 지속가능금융에서 환경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작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국내 ESG 금융 2012조원 가운데 환경금융 비중을 17%로 집계했다. 나머지 83%는 사회·지배구조 영역이거나 환경으로 분류되지 않는 자금이다. 790조원이라는 공급 목표는 이 비중을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에 가깝고, 실제 이동 폭은 집행 단계에서 확인될 사항이다.
10일 서울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는 CDP한국위원회 주최로 '2026 CDP 코리아 컨퍼런스'가 열렸다. 약 300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김종대 인하대 SDG연구소장 연구팀은 글로벌 금융기관을 6년간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규제가 없는 환경에서는 화석연료 투자가 기업가치와 수익성 면에서 더 유리하게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자율에 맡긴 전환이 왜 더디게 진행되는지를 수익률 쪽에서 설명한 결과다.

규제와 시장이 함께 움직인 사례는 해외 은행 실적에서 확인된다. 스탠다드차타드의 2025년 지속가능금융 수익은 10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9% 늘었다. 부문별로는 뱅킹이 6억1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1%, 자본시장·자문이 6400만달러로 42% 증가했다. 트랜잭션 서비스는 3억4000만달러, 마켓은 1억1700만달러다.
누적 공급액은 2021년 이후 1570억달러로, 2030년까지 3000억달러를 동원하겠다는 목표의 약 52% 수준이다. 자체 운영 배출량은 2018년 14만8000tCO₂e에서 2025년 6000tCO₂e로 96% 줄어 스코프1·2 기준 넷제로를 달성했다. 이 은행은 앞서 첫 전환계획을 공개하며 2050년까지 금융활동 전반의 넷제로 경로를 제시했다. 자체 배출 감축과 금융배출량 감축은 난이도가 다른 과제이며, 후자의 진행 상황은 향후 공시로 판별될 부분이다.
대외 압력은 별개로 작동한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면서 철강·알루미늄 등 배출집약 품목을 수출하는 기업의 비용 계산이 달라졌다. 국내 수출기업에 적용되는 시점별 부담 추정치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전환 자금 수요가 규제 일정에 연동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790조원이 이 수요와 맞물릴지는 배분 기준이 나와야 계산이 선다.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790조원의 기준 기간과 공급 주체 구성, 녹색과 전환의 배분 비율, 그리고 가이드라인의 적격 요건이다. 기업은행이 하반기 상품을 내놓으면 금리 조건과 대상 기업 요건에서 첫 실물 사례가 나온다. 정책 문서의 총액과 대출 창구에서 실제로 승인되는 건수 사이의 거리는 그때부터 측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