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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데이터의 회색지대, 안내서로 덮을 수 있나

미디어·입력 2026. 03. 01. 오후 1:12:00
공정이용 가이드 발간과 '선 사용·후 보상' 사이에 남은 틈
AI 학습용 데이터가 통과해야 할 문은 아직 폭이 정해지지 않았다
AI 학습용 데이터가 통과해야 할 문은 아직 폭이 정해지지 않았다 / ⓒ 브레스저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지난 2월 26일 생성형 AI의 저작물 학습을 다루는 '공정이용 안내서'를 내놓았다. 공정이용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쓸 수 있게 하는 저작권법상 예외 규정으로, 안내서가 참조하는 근거는 저작권법 제35조의5다. 정부가 AI 학습과 저작권의 관계를 문서 형태로 정리해 공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내서의 골자는 두 갈래다. 하나는 AI가 저작물을 읽어 들여 저장하고 처리하는 행위가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할 수 있고, 원칙적으로는 권리자의 사전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상업적 목적이든 웹 크롤링 방식이든 그 사실만으로 공정이용에서 자동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이용 여부는 네 가지 요소를 함께 저울에 올려 가린다. 이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와 용도, 가져다 쓴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 그리고 그 저작물의 현재 또는 앞으로의 시장·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다. 안내서에 실린 사례들은 실제 사건을 옮긴 것이 아닌 가상으로 만든 것이고, 문체부와 저작권위원회의 유권해석도 아니다. 최종 판정은 법원이 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반년 가까이 걸렸다. 문체부와 저작권위원회는 2025년 9월 인공지능-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 특별분과를 꾸렸고, 10월 13일부터 11월 2일까지 AI 개발사와 권리자를 상대로 설문을 돌렸다. 11월부터 석 달가량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12월 4일 대국민 설명회에서 초안을 공개했다.

안내서 발간 하루 전인 2월 25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는 저작권 과제를 담은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의결했다. 여기에는 네 가지 핵심과제가 들어 있다. 안내서 확산·고도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사에 대한 형사책임 면제 방안 검토, 회색영역 저작물 활용 촉진, 공공저작물 개방 확대다.

회색영역 대책이 논란의 진원이다. 음악·도서·방송처럼 거래 시장이 형성된 저작물은 거래를 활성화해 풀고, 시장이 없는 온라인 공개 게시물 등에는 옵트아웃, 즉 학습을 거부할 권리를 준다. 거부 표시가 붙지 않은 게시물은 '선 사용·후 보상' 원칙에 따라 학습에 우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안내서가 말하는 '원칙적 사전 허락'과 행동계획이 말하는 '선 사용·후 보상'은 이용 순서를 정반대로 잡는다. 하루 사이에 나온 두 문서가 서로 다른 출발점을 제시한 셈. 창작자 쪽이 반발한 지점도 여기다.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한국방송협회 등 문화콘텐츠 분야 16개 단체는 행동계획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고, 한국신문협회는 그에 앞서 전략위원회에 비슷한 취지의 의견서를 보냈다.

쟁점 항목은 행동계획 액션플랜 32번 'AI 학습·평가 목적 저작물 활용 및 공정 유통 생태계 활성화'로, 'AI규제혁신' 전략 아래 놓여 있다. 규제를 푸는 항목 안에 창작자 권리 설계가 함께 들어간 배치다. 인공지능기본법 제2조는 저작자·실연자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시스템을 '고영향 인공지능'에 포함시켰지만, 제13조 제2항과 제35조 제1항이 정부에 지운 것은 '노력할 의무'다.

보상 수준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지, 옵트아웃 표시를 무슨 기술 규격으로 붙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형사책임 면제도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어 입법 형식과 적용 범위는 윤곽 밖이다. 안내서는 이 틈을 법으로 메우는 대신 행정문서로 잠시 덮어둔 쪽에 가깝다. 문체부는 발간과 함께 권리자·개발사·이용자를 상대로 한 저작권 상담과 분쟁 조정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이 조치의 존재 자체가 다툼을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법원이 벽화 훼손 사건(2012다204587)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전례가 있듯, 창작물을 둘러싼 공적 처분의 결과는 결국 법정에서 계산된다. 안내서가 아무리 촘촘해도 소송 한 건이 그 해석을 바꿔놓을 수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온라인에 그림을 게시하는 사람에게 당장 달라지는 것은 표시 하나다. 학습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어디에 어떻게 남길지가 저작권법 개정안의 형태로 정해지기 전까지, 게시 버튼을 누르는 행위의 의미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개정안이 국회로 향하는 시점이 이 문제의 다음 갈림길이다.

미디어 기자 · Breath.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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