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줄여서 AI 기본법이 1월 22일 시행에 들어갔다. 시행 한 달을 지나며 논의의 중심은 법의 존재가 아니라 법이 실제로 무엇을 붙잡는가로 옮겨갔다. 정부가 고영향 AI로 지정한 10개 영역과, 최소 1년으로 예고된 계도기간이 그 두 축이다.
고영향 AI란 사람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정부는 에너지, 먹는 물, 의료, 원자력, 범죄 수사, 채용, 대출 심사, 교통, 공공서비스, 교육 열 곳을 여기에 넣었다. 이 영역에 해당하면 투명성·안전성·책임성 의무가 집중된다. 시스템이 어떻게 판단했는지 설명하고, 위험을 관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열 개의 문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고영향 AI를 사람의 개입이 전혀 없는 시스템으로 정하고 있어 해당 사례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예시로 든 것이 완전 자율주행 4단계 수준이다. 목록은 열 줄인데 실제로 걸리는 사례는 극히 좁아지는 구조다.
채용을 놓고 보면 간극이 선명해진다. 서류 심사에 AI를 쓰더라도 사람이 개입하면 규제 대상에서 빠진다. 그런데 개입 수준을 무엇으로 판단하는지는 법령에 규정돼 있지 않다. 담당자가 결과를 눈으로 훑는 것과 판단을 뒤집을 권한을 갖는 것 사이의 거리가 상당한데, 그 거리를 재는 눈금이 없는 상태다.
이런 설계는 의도된 면도 있다. AI 기본법은 유럽연합의 AI법과 달리 특정 인공지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사회적 영향이 큰 영역에만 관리 책임을 얹는 차등 규제 방식이다.

사업자도 개발사업자와 이용사업자로 나뉘고, 사업자 책무 1~3호는 개발사업자가 이행하면 이용사업자도 이행한 것으로 본다. 도입 기업의 부담을 덜자는 장치다.
현장의 관심도 여기에 쏠려 있다. 법무법인 대륜과 한국인공지능협회는 1월 29일 여의도에서 'AI 기본법: 기업 대응 전략' 세미나를 온·오프라인으로 열었다. 정부는 최소 1년의 계도기간을 두고 지원데스크를 운영하며,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계도기간을 언제부터 세는지, 어디에 근거한 기한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규제의 방향 자체가 갈린다는 점도 드러났다. 서울시와 서울AI허브가 1월 30일 연 'AI 서울 2026'에서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는 범용 AI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같은 행사에서 고상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혁신을 살리려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맞섰다. 고 연구위원은 유럽연합이 고위험 AI 규제 시행 시점을 늦추는 쪽으로 움직이고 미국은 탈규제 기조를 이어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도 논쟁 대상이다. 이 법을 세계 첫 AI 기본법으로 보는 시각과 그렇지 않다는 반론이 함께 나온다. 명칭 다툼보다 실질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법이 있느냐가 아닌 법이 몇 건에 적용됐느냐가 다음 1년의 성적표가 된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크지 않다. 채용 결과에 AI가 쓰였는지 궁금한 구직자도, 대출 심사에서 이유를 듣고 싶은 사람도 지금 손에 쥔 것은 많지 않다. 계도기간이 끝나고 사람 개입의 눈금이 정해지는 시점에야 이 법은 처음으로 실제 판정을 내리게 된다. 그때까지 AI 기본법은 시행된 법이면서 동시에 아직 작동을 시작하지 않은 법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