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지난 1월 22일 전면 시행되며 한 달을 넘겼다. 특정 산업을 따로 규율하는 개별법과 달리 AI 전반을 포괄하는 상위 법률이어서, 다른 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이 법이 우선 적용된다. 제정 순서로는 두 번째지만 전면 시행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시행 한 달을 지난 현장의 반응은 정돈보다 정지에 가깝다.
핵심은 '고영향 AI'라는 개념이다. 법은 AI가 내놓은 결과가 사람의 생명·신체 안전이나 기본권 향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AI를 고영향 AI로 정의한다. 정부는 여기 해당하는 분야를 10개로 지정한 것으로 파악되며, 의료·보건과 에너지, 채용, 대출 심사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고영향으로 분류되면 사업자는 위험 관리 방안과 결과 설명 방안, 이용자 보호 방안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무엇이 고영향인지 가르는 선이다. 법 시행 이후에도 적용 범위가 조문 차원에서 촘촘히 정리되지 않아 유권해석과 추가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학계와 산업계 양쪽에서 나왔다. 기준이 흐릿하면 기업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과잉 대응으로 비용을 늘리거나,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의료 현장이 그 흐릿함을 가장 빠르게 체감했다. 삼성서울병원 AI연구센터는 지난 23일 '의료 AI 시대의 법·제도 재편 세미나'를 열고 고영향 AI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논의를 진행했다. 병원에서 생성형 AI는 진단보다 의무기록 작성이나 문서 정리 같은 행정 보조에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역까지 고영향으로 볼지에 대한 잣대가 서 있지 않다. 환자 안전과 직접 닿지 않는 업무를 규제 대상으로 묶을 것인가는 병원의 도입 결정을 그대로 좌우한다.
규제가 겹치는 지점도 있다. 의료 AI가 의료기기에 해당하면 식약처 인증을 받아야 하고, 동시에 고영향 AI에 해당하면 과기정통부 소관 의무까지 적용될 수 있다. 김재선 동국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이런 이중 적용 가능성을 지적했다. 두 규제가 요구하는 문서와 절차가 어디까지 갈음되는지는 정리 전이다.
이용자가 체감할 부분은 조금 더 분명하다. 생성형 AI를 쓴 제품·서비스는 AI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용자에게 미리 알려야 하고, 결과물에는 표시 의무가 붙는다. 눈에 보이는 워터마크를 넣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표시의 형태와 강도를 두고는 설명이 엇갈려, 개발사들이 실제 구현 방식을 확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정부는 이 법을 '진흥 70%, 규제 30%'의 균형 법안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AI 연구개발과 학습용 데이터 구축, 도입 지원, 전문인력 확보 같은 육성 규정이 법에 들어 있다. 법 관련 문의를 받는 인공지능기본법 지원데스크도 운영 중이다. 진흥 쪽 조항이 아무리 두터워도, 규제 쪽 30%의 경계가 흐리면 기업은 그 30%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바깥 흐름도 참고할 만하다. EU는 AI법을 한국보다 앞서 제정했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시행 시기를 늦추는 쪽으로 선회했다. 한국은 반대로 전면 시행에 곧장 들어갔고, 그 대가로 제도 설계의 빈틈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국내에서는 AI가 사용자 컴퓨터 전반을 제어하도록 돕는 도구 '오픈클로'가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보안 우려로 차단되기도 했다. 새로운 형태의 AI가 등장할 때마다 어느 칸에 넣을지부터 다시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규칙이 없는 것보다 나쁜 것은 규칙이 있는데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모르는 상태다. 의무기록을 정리하는 프로그램 하나를 놓고 병원 실무자가 법무팀에 묻고, 법무팀이 다시 부처에 묻는 시간만큼 환자가 만나는 진료실의 변화는 늦어진다. 경계선을 다시 긋는 작업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느냐에 따라, 이 법은 신뢰의 토대가 될 수도 있고 결정을 미루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