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의 윤곽이 이번 주 드러난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2월 25일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최종안과 함께 로드맵 초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회계기준원은 하루 뒤인 26일 '2026년 제1회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열어 공시기준서 정부 제출안을 의결하는 일정으로 파악된다. 이틀에 걸친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2021년 1월 이후 수차례 미뤄진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이 처음으로 문서 형태의 기준을 갖게 된다.
쟁점은 유예의 폭이다. 정부 제출안은 스코프3 배출량을 의무 공시 대상에 넣되, 공시 시작 후 3년간 적용을 미루는 구조를 담고 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같은 항목에 둔 유예 기간은 1년으로, 한국안과 2년 차이가 난다.
스코프3가 왜 논쟁의 중심인지는 배출량 구분에서 드러난다. 스코프1은 기업이 직접 내뿜는 배출, 스코프2는 전기·스팀 등 에너지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이다. 스코프3는 원재료 채굴과 운송, 제품 사용과 폐기, 협력업체까지 공급망 전체를 포괄한다. 기업이 자기 사업장 밖의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유일한 항목이고, ISSB가 이를 핵심 공시 항목으로 의무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준의 좌표는 이미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다. ISSB가 만든 IFRS S1·S2는 글로벌 공시 프레임워크의 기준선 역할을 하고 있고, 40개 이상의 주요 관할권이 이를 전면 도입하거나 참조하기로 했다. 영국은 상장사를 대상으로 UK SRS 도입을 추진하고, EU는 CSRD와 ESRS 체계를 운영한다. 아시아 일부 국가도 IFRS S1·S2 채택 절차를 밟고 있다.
다만 방향이 같다고 속도까지 같지는 않다. EU는 2025년 옴니버스 패키지와 위임법안으로 택소노미 공시 항목을 대폭 정리했다. 비금융기업의 데이터포인트는 64%, 금융기관은 89% 줄어 핵심 지표 중심으로 재편됐다. CSRD와 CSDDD의 적용 범위도 조정됐는데, 이를 규제 후퇴로 볼지 실행 가능한 수준으로의 정교화로 볼지는 해석이 갈린다.

항목 수가 줄어든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검증이다. CSRD와 미국 캘리포니아 기후공시법이 요구하는 제3자 검증 수준은 현재 '제한적 확신'에서 '합리적 확신'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캘리포니아 법은 스코프3를 포함한 공시 의무를 부과한다. ESG Book은 2026년 2월 발간한 정책 브리프에서 올해를 관통하는 흐름으로 '데이터 질과 감독'을 지목했는데, 보고서를 얼마나 내느냐보다 그 숫자가 견딜 수 있느냐로 무게가 옮겨갔다는 뜻이다.
여기에 실물 비용이 겹친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부터 본격적인 과세 단계에 들어간다. 공급망 배출량이 공시 항목이자 원가 항목으로 동시에 작동하는 구간에 진입한 뜻이다. 유예 기간이 길수록 기업의 준비 부담은 뒤로 밀리지만, 그동안 공급망 데이터 축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예 종료 시점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제도 설계 논의는 발표 직전까지 이어졌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2월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ESG 금융추진단 제6차 회의를 열고 관계부처와 유관기관, 산업계, 투자자, 전문가와 주요 쟁점을 논의했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EU와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2월 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실과 한국지속가능성인증포럼이 지속가능경영 공시 관련법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최초 공시 시기는 일본이 도입하는 2027년 3월 이후와 EU 역외기업 공시가 시작되는 2029년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용 대상 기업의 자산 기준과 단계별 확대 일정, 제3자 검증 규정은 이번 발표에서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유예 조항의 실효성은 유예 기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기간에 무엇을 쌓느냐로 판가름 난다.
25일과 26일, 이틀치 일정표가 남았다. 기준서 문안이 공개되면 3년 유예의 기산점이 어디인지, 검증 의무가 어느 수준으로 설정되는지가 함께 드러난다. 그 두 줄이 향후 몇 년간 국내 기업이 감당할 데이터 작업의 총량을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