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대사 한마디 없이, 25개국을 한 호흡으로 「삼사라」

프레임·입력 2026. 07. 13. 오전 9:51:00
성지와 공장과 폐허를 병치한 론 프릭의 2011년작
영화 「삼사라」가 응시하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흩어짐이다
영화 「삼사라」가 응시하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흩어짐이다 / 사진 Jnzl's Photos · CC BY 2.0

모래가 손끝에서 떨어진다. 색색의 가루가 바닥에 쌓여 무늬가 되고, 그 무늬는 완성되는 순간 목적을 잃는다. 영화 「삼사라」는 그 흩어짐의 시간을 붙잡아 둔다. 말은 한마디도 없다.

2011년 공개된 이 영화는 론 프릭이 연출하고 마크 마지드슨이 제작했다. 두 사람은 1985년 「크로노스」와 1992년 「바라카」에서 한 팀이었고, 2006년에 다시 모여 이 작품을 설계했다. 촬영은 25개국에서 5년에 걸쳐 이뤄졌고, 70mm 필름으로 찍은 화면을 디지털로 옮겼다. 제목이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를 두 사람은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남', 곧 덧없음으로 읽었다.

영화는 여행기도, 통상적인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공식 소개는 이 작품을 '말 없는, 안내받는 명상'이라고 부른다. 관객은 설명 없이 던져진다. 사원의 의식과 산업 현장, 버려진 건물이 자막도 지명 표기도 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의 관계를 짓는 일은 보는 사람의 몫으로 넘어온다.

대사를 지운 선택이 이 영화의 성격을 결정한다. 어느 나라의 어떤 유산인지 알려 주지 않으면 관객은 대상을 지식으로 분류하지 못하고 감각으로 붙든다. 돌의 결, 금속의 광택, 천이 스치는 소리, 기계가 규칙적으로 내는 진동. 유산을 목록으로 다루는 데 익숙한 눈에 이 방식은 낯설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보존과 활용의 긴장도 화면 안에서 미끄러지지 않는다. 의식을 치르는 손과 기계를 다루는 손이 같은 리듬으로 편집될 때, 전통은 지켜야 할 유물을 넘어 지금도 반복되는 노동의 한 형태로 보인다. 폐허 장면이 뒤따르면 물음은 날카로워진다. 어떤 것은 왜 보존되고 어떤 것은 왜 방치되는가.

연출의 힘은 대비에 있다. 프릭은 설명 대신 병치를 택했고, 70mm의 해상력은 그 병치를 감정보다 물성의 층위에서 성립시킨다. 촬영 자체가 목적이 된 화면도 있다. 몇몇 장면에서 이미지는 너무 아름다워서 대상의 사정을 지우고, 관객은 헤아리는 대신 감탄에 머문다.

말을 지운 대가도 있다. 맥락이 제거된 유산은 어디에나 놓일 수 있는 이미지가 되고, 그 보편성은 각 지역이 감당해 온 조건을 흐린다. 물음표가 강한 만큼 답은 극장 밖으로 미뤄진다. 「삼사라」는 완결된 사유가 아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장치에 가깝다.

여름 한복판, 냉방이 도는 어두운 방에서 두 시간을 말 없이 보내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 두 시간이 지나면 안내판 너머의 돌과 쇠는 조금 다른 표면으로 남는다. 설명을 걷어낸 화면이 의식의 손과 기계의 손을 나란히 놓았을 때, 관객이 본 것은 사라져 가는 세계인가 여전히 돌아가는 세계인가.

프레임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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