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멕시코 사막에 지도에 없는 마을 하나가 세워진다. 물리학자들이 모여들지만 그들이 무엇을 만드는지 바깥 세계는 알지 못한다. 「오펜하이머」는 그 폐쇄된 도시에서 벌어진 계산과 논쟁을 따라간다. 8월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완성된 물건보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판단을 오래 비추기 때문이다.
2023년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바탕이고, 킬리언 머피가 오펜하이머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원자력위원회 위원 루이스 스트로스를 연기했다. 촬영은 호이터 판호이테마가 맡았다.
도입부는 학자의 이력에서 출발한다. 1920년대 괴팅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오펜하이머는 유럽을 돌며 이시도어 라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와 버클리에 양자물리학과를 세운다. 1942년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이 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데려오고, 사막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들어선다. 라비는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합류를 거절한다.
영화가 공들여 보여주는 것은 폭발이 아니라 그 앞의 회의실이다. 군의 구획화 규정 탓에 과학자들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자기 몫만 계산한다. 전체를 보는 사람이 극소수인 구조에서 개별 연구자의 양심은 작동할 여지가 좁아진다.
여기서 지금의 인공지능 개발 현장이 겹친다. 대형 모델을 만드는 조직도 데이터 수집과 학습, 배포가 다른 팀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계 담당자가 최종 쓰임새를 다 알기는 어렵다. 능력을 만드는 일과 그 능력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일이 분리되면 책임도 함께 흩어진다. 영화는 이 분리를 1940년대의 사례로 보여주지만, 틀 자체는 낡지 않았다.
연출은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소리로 밀어붙인다. 루드비그 예란손의 음악과 제니퍼 레임의 편집은 계산이 진행될수록 조여드는 리듬을 만들고, 관객은 결과를 알면서도 긴장한다. 사적인 관계가 1954년 보안 청문회의 재료로 변해 가는 흐름은 촘촘하다. 기술적 성취와 개인의 취약함이 같은 서류철에 묶이는 과정이 서늘하다.
다만 이 영화의 시점은 폭탄을 만든 쪽에 붙들려 있다. 화면이 따라가는 것은 오펜하이머의 연구와 로스앨러모스, 그리고 청문회장이고, 피해를 겪은 쪽의 시간은 그 바깥에 있다. 기술의 결과를 만든 사람의 죄책감으로 환산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히로시마와 광복을 함께 떠올리는 8월의 한국 관객에게 이 공백은 크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2024년 2월 영국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받았다. 제96회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을 가져갔다. 한국에서는 2023년 8월 15일 개봉해 323만 명이 봤다.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권한다. 자기 코드가 회사 밖으로 나간 뒤 어떤 경로로 흘러갔는지 끝까지 따라가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만든 사람의 선의는 그 기술이 어디에 쓰일지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 쓰는 기능 명세 한 줄이 몇 년 뒤 누구의 하루에 닿을지, 극장을 나서며 헤아리게 만드는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