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 화면의 청문회장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1959년, 상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루이스 스트로스가 상원 위원들과 마주 앉아 있다. 심문은 5년 전 한 물리학자의 보안 청문회로 거슬러 올라가고, 화면은 곧 컬러로 바뀌어 뉴멕시코 사막의 젊은 오펜하이머에게 건너간다.
「오펜하이머」는 이 두 시간대를 세 시간 내내 교차시킨다. 8월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는 이유가 있다. 기술을 만든 사람과 그 기술의 쓰임을 정한 사람이 끝내 같은 방에 앉지 못하는 사정을, 이만큼 집요하게 붙든 상업영화가 드물다.
2023년 작품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2005년에 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바탕이다. 킬리언 머피가 오펜하이머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원자력위원회 위원 스트로스를 맡았고,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플로렌스 퓨가 그 곁을 채운다.
촬영감독 호이터 판호이테마는 IMAX 65mm와 65mm 대형 필름을 섞어 찍었는데, 흑백 IMAX 필름은 이 영화를 위해 코닥이 새로 만든 것이다. 흑백 필름으로 IMAX 장면을 찍은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도입부는 학자의 이력을 빠르게 훑는다. 1920년대 괴팅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오펜하이머는 유럽에서 이시도어 라비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와 버클리에 양자물리학의 거점을 세운다. 공산당원인 제자와 동료, 그리고 진 태틀록과의 관계가 이 시기에 쌓인다. 1942년 레슬리 그로브스가 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데려오고, 사막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들어선다.
라비는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합류를 거절한다.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가 적당하다. 1945년 7월의 실험과 그 뒤의 일은 화면에서 보는 편이 낫다.
이 영화의 골격은 색이다. 컬러 장면은 오펜하이머의 눈으로 본 주관의 기록이고, 흑백 장면은 다른 인물의 눈으로 본 객관의 기록이라고 놀란은 설명했다. 그 설명을 그대로 받아 적을 필요는 없다.
화면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따로 있다. 만드는 사람의 시간과 관리하는 사람의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는 감각이다.
컬러의 사막에서는 계산이 쌓이고 사람들이 모이며 무언가가 완성돼 간다. 흑백의 청문회장에서는 끝난 일이 서류로 다시 열리고, 같은 사실이 다른 죄목이 된다. 1954년 청문회는 오펜하이머의 Q 인가를 2대 1로 취소했고, 1959년 상원은 스트로스의 상무장관 인준을 부결했다. 영화는 이 두 청문회를 거울처럼 마주 세워, 기술자를 심판한 권력이 5년 뒤 같은 방에서 심판받는 순환을 만든다.
여기서 영화가 세우는 논리를 따라가 볼 만하다. 그로브스는 1943년 7월, 오펜하이머에 관한 어떤 정보와도 무관하게 지체 없이 보안 인가를 내주라고 지시했다. 폭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년 뒤인 1953년 12월, 스트로스는 같은 이력을 근거로 인가 정지를 통보한다.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 물리학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오펜하이머의 결백이나 유죄가 아니다. 기술자의 신뢰도가 권력이 그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오르내린다는 사실이다. 이 논리는 1940년대에 갇혀 있지 않다.
로스앨러모스의 구획화 규정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과학자들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자기 몫만 계산한다. 전체를 보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개별 연구자의 양심이 작동할 여지는 그만큼 좁다. 폭탄을 쓸지 말지는 워싱턴의 회의실에서 정해지고, 과학자에게 결론은 그 뒤에 오는 결과다.
지금 대형 인공지능 모델을 만드는 조직도 데이터 수집과 학습, 배포가 다른 팀으로 갈라져 있고, 각 단계 담당자가 최종 쓰임새를 다 알기는 어렵다. 능력을 만드는 일과 그 능력의 쓰임을 정하는 일이 분리되면 책임도 함께 흩어진다. 영화는 이 분리를 80년 전 사례로 보여주지만, 틀은 낡지 않았다.
연출의 힘은 소리와 리듬에서 나온다. 루드비그 예란손의 음악과 제니퍼 레임의 편집은 계산이 진행될수록 조여드는 박자를 만들고, 관객은 결과를 알면서도 긴장한다.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 대신 실제 폭약으로 찍었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그러나 완성본에는 160명 안팎의 시각효과 인력이 만든 수백 컷이 들어 있고, 폭발 장면에도 디지털 합성이 쓰였다. 만든 사람의 설명과 실제 결과물 사이의 이 간극은, 공교롭게도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닮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의 축이 되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는 실제로는 없었던 장면이다. 연쇄반응이 대기를 태울 가능성을 오펜하이머가 상의한 상대는 MIT의 칼 컴프턴이었다. 놀란은 이 허구의 대화를 영화의 처음과 끝에 두고, 마지막 대사로 결론을 내리게 한다. 전기영화가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어낸 장면에 맡긴 것이고, 이 선택은 영화의 설득력을 얻는 대가로 사실의 힘을 내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도 화면에 없다. 놀란은 주인공이 겪은 것만 보여 주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 피해를 겪은 쪽의 시간은 영화 바깥에 남았다. 히로시마 시장을 지낸 히라오카 다카시는 핵무기의 공포가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한 날은 2023년 8월 15일이었고 323만 명이 봤다. 광복절에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공백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이 필요 없다.
지금 다시 보면 달라 보이는 것이 있다. 영화가 나오기 일곱 달 전인 2022년 12월 16일, 미국 에너지부 장관 제니퍼 그랜홈은 1954년의 인가 취소 결정을 무효화했다. 위원회가 자기 규정을 어긴 결함 있는 절차였다는 이유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누명을 쓴 과학자의 비극으로 읽혔다. 명예 회복 이후에 보면 청문회 장면이 가리키는 것은 개인의 억울함에서 제도의 습성으로 옮겨 간다. 필요할 때 의심을 덮고 쓸모가 다하면 같은 의심을 꺼내 드는 습성은, 68년 만에 결정이 정정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2024년 2월 영국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받았고, 제96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을 가져갔다. 전 세계 흥행 수입은 9억 8천만 달러를 넘겨 2023년 개봉작 가운데 세 번째였다.
시선을 화면 바깥으로 옮기면 뉴멕시코 사막이 남는다. 영화가 트리니티 실험장에 다시 관심을 모으자, 실험 낙진을 맞고도 보상에서 빠져 있던 인근 주민과 우라늄 광산 노동자의 문제가 미국 의회로 올라갔다. 1990년 방사선 피폭 보상법을 넓히자는 논의였고, 뉴멕시코 주의회도 이를 지지하는 결의를 냈다.
영화가 끝내 비추지 않은 사람들이 영화 때문에 문턱 하나를 넘었다. 오펜하이머의 손을 떠난 기술이 80년 만에 닿은 곳은 청문회장도 시상식장도 아니었다. 그 사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