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미나리, 물가에서 자라는 이름

프레임·입력 2026. 05. 17. 오전 11:25:00
1983년 아칸소의 밭고랑에 심긴 한 가족의 돌봄과 내림
영화 「미나리」의 제목이 된 물가의 채소
영화 「미나리」의 제목이 된 물가의 채소 / ⓒ 브레스저널

물가에 심으면 알아서 자라는 풀이 있다. 손이 덜 가고, 두 번째 해에 더 잘 자란다. 정이삭 감독의 2020년 영화 「미나리」는 그 풀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미국 아칸소의 흙에 한국 채소를 심는 가족의 이야기이니, 제목은 은유이기 이전에 작물의 이름이다.

1983년, 이씨 가족 네 사람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칸소 시골로 옮겨 온다. 아버지 제이컵은 벌판을 개간해 한국 채소를 길러 댈러스에 팔 생각이다. 도착하자마자 그가 한 일은 수맥을 찾아 주겠다는 다우징 제안을 물리치고 제 손으로 우물을 파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에 다녀온 이웃 폴이 그 곁을 거든다.

어머니 모니카의 시선은 다르다. 새 환경은 실망스럽고, 아들 데이비드의 심장은 걱정거리다. 아이는 무리해서 뛰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부부는 인근 부화장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고, 아이들이 듣는 줄도 모른 채 다툰다.

낮 동안 아이들을 볼 사람이 없어, 부부는 한국에 있던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를 불러들인다. 데이비드는 할머니와 방을 나눠 쓰게 되고, 자기가 상상해 온 할머니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난다. 돌봄이 국경을 건너와 한 방에 놓이는 순간이다.

가정의 달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는 까닭은 텃밭 때문이다. 이민 가정의 살림에서 채소밭은 식비를 줄이는 수단이면서, 고향의 입맛과 절기 감각을 옮겨 심는 그릇이기도 하다. 무엇을 심을지 정하는 손이 곧 무엇을 물려줄지 정하는 손이다.

「미나리」는 그 손을 둘로 나눈다. 개간해 시장에 내다 팔 밭과, 물가에 조용히 심는 한 뙈기.

이 갈라짐이 영화의 뼈대다. 아버지의 밭은 성공을 증명해야 하고, 할머니가 들여온 씨앗은 증명할 것이 없다. 전통을 지키는 일과 그것으로 먹고사는 일이 늘 같은 곳을 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는 설교 없이 두 개의 경작지로 보여 준다. 지역의 종자와 손맛을 지키자는 말이 상품화의 언어와 부딪힐 때 생기는 마찰도 여기서 멀지 않다.

연출은 사건보다 질감을 믿는다. 얇은 벽, 흙빛, 병아리 감별장의 소음 같은 것들이 인물의 형편을 대신 설명한다. 감독 자신의 성장 경험이 바탕이 된 각본이어서, 어린 데이비드의 눈높이가 카메라의 높이를 자주 결정한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 채 목격한 어른들의 다툼은 관객에게도 조각으로만 도착한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이 영화의 균형추다. 손주가 기대한 다정한 할머니의 상을 계속 배반하면서, 그 배반이 오히려 돌봄의 다른 얼굴임을 알게 만든다. 이 배역으로 그는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영국 아카데미와 영화배우조합에서도 같은 부문을 받았다.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함께 가져갔다.

아쉬움을 적자면 아버지 쪽 서사의 밀도다. 농장의 성패를 둘러싼 결정들이 부부의 언쟁으로 압축되면서, 제이컵이 왜 그토록 제 손으로 우물을 파야 했는지는 관객이 짐작으로 메워야 한다. 인물의 고집을 설명 대신 반복으로 쌓는 방식은 담백하지만, 그 반복은 후반으로 갈수록 얇아진다.

극적인 사건이 밀도 있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관객이라면 굳이 시간을 낼 이유는 없다. 우물을 파고 씨를 뿌리고 다시 물을 긷는 일상이 반복되는 동안, 이야기는 좀처럼 매듭을 짓지 않는다. 이민 서사에서 성공이나 좌절의 분명한 결말을 확인하고 싶은 쪽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라는 말에 다정함만 담아두고 싶은 사람에게도 순자는 불편한 인물일 것이다. 화투를 치고 험한 말을 뱉는 노인을 끝까지 미워하지 않으려면, 관객 쪽에서도 얼마간 품을 들여야 한다. 그 품이 아깝지 않은 사람에게만 이 농장은 두 번째 해를 보여준다.

프레임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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