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난감 공기총에 맞아 떨어진 참새 한 마리가 소년의 손에 남았다. 목의 노란 얼룩이 낯설어 소년은 봄베이 자연사 학회를 찾아갔고, W. S.
밀러드는 노란목참새라는 이름을 일러준 뒤 박제 표본실로 그를 데려갔다. 그날 이후 소년은 새를 쏘는 대신 새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홉째 막내로 태어나 세 살에 어머니를 잃고 외삼촌 손에 자란 그 아이가 훗날 인도 전역의 새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한 사람이 된다.
살림 모이주딘 압둘 알리는 1896년 11월 12일 봄베이에서 태어나 1987년 6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1947년 이후 봄베이 자연사 학회를 지탱하는 인물이 되었고, 학회에 대한 정부 지원을 끌어냈다. 케올라데오 국립공원을 만들고 케랄라 사일런트 밸리의 파괴를 막는 데 개인적 영향력을 썼으며, 시드니 딜런 리플리와 함께 열 권짜리 《인도와 파키스탄의 새 안내서》를 남겼다. 1958년 파드마 부샨, 1976년 파드마 비부샨을 받았다.
Q1. 노란목참새를 들고 밀러드를 찾아간 하루가 인생을 갈랐다고 스스로 적으셨습니다. 열 살 무렵의 소년에게 그 만남은 무엇을 바꿔놓았습니까?
새를 쏘는 재미와 새를 아는 재미가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동네에서는 사격 시합이 자주 열렸고 저는 양아버지 아미루딘의 권유로 사냥 책부터 읽었으니, 총이 앞섰지요. 그런데 밀러드가 표본실 문을 열어주자 서랍마다 이름표가 붙은 새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가 에하의 《봄베이의 흔한 새》 같은 책을 빌려주고, 가죽을 벗겨 표본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저는 공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짝을 이룬 참새 한 쌍에서 수컷을 쏘아 떨어뜨린 뒤 그 빈 곳을 다른 수컷이 어떻게 메우는지 적어둔 것이 제 초기 관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도 사람이 조류학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그 시절에 드문 선택이었습니다.
Q2.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하셨습니다. 열세 살 무렵 두통으로 수업을 자주 빠지셨고, 대학에서도 첫해를 넘기지 못하셨는데요?
두통이 심해 신드의 친척 집으로 보내졌고, 그렇게 학업이 끊긴 채 1913년 봄베이대학 입학시험을 겨우 통과했습니다. 세인트 자비에르 대학에 들어갔다가 한 해 만에 그만두고 버마 타보이로 갔습니다. 가족의 광산과 목재 일을 돌보러 간 것이었지만, 그 일대의 숲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1917년 인도로 돌아와 다바르 상업대학에서 상법과 회계를 배웠습니다. 아침 수업을 마치면 세인트 자비에르로 건너가 동물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에텔베르트 블라터 신부가 제 관심을 알아보고 동물학을 권한 덕입니다.
제 이력의 결함을 감출 생각은 없습니다. 저를 학자로 만든 것은 공책이었습니다.
Q3. 집 앞의 새 한 종을 오래 보는 관찰법을 고수하셨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도 학문이 된다고 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종을 한 철 내내 놓치지 않고 보면 그 새가 언제 둥지를 반쯤 짓고 짝을 부르는지, 한 마리가 몇 마리와 차례로 짝을 맺는지가 드러납니다. 원정을 가야 학문이 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관찰은 같은 대상을 오래 보아서 깊어집니다.
인도 전역을 도는 조사에서도 원칙은 같았습니다. 지역마다 어떤 새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하나씩 적었습니다. 그 기록을 이어붙인 것이 훗날 안내서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인도 사람이 인도의 새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밀었습니다. 누군가는 첫 줄을 써야 했습니다.
Q4. 조류학을 대중에게 여는 책을 여러 권 쓰셨습니다. 학계 안쪽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향해 쓰신 까닭이 있습니까?
새를 지키자는 말은 새를 아는 사람에게만 가 닿습니다. 이름을 부를 줄 모르는 대상은 사라져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당에서 펼쳐 들 수 있는 책을 쓰려 했습니다.
쉽게 쓴다는 것이 대충 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종의 깃과 울음과 습성을 정확히 적되, 처음 새를 보는 사람이 따라올 수 있는 문장이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책들이 조사보다 더 멀리 갔습니다. 표본실에 들어와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새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으니까요.
Q5. 브레스저널은 이 기획을 '지구' 축에서 묶고 있습니다. 케올라데오를 보호구역으로 세우고 사일런트 밸리가 사라지는 것을 막으신 일은 새를 세는 일과 어떻게 이어집니까?
같은 일입니다. 새는 물과 나무가 있는 곳에만 있습니다. 어느 습지에 어떤 오리가 몇 마리 겨울을 나는지 여러 해 적어두면, 그 습지를 메우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놓을 것이 생깁니다.
바라트푸르의 물웅덩이는 그 자체로는 대단찮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물이 사라지면 먼 곳에서 날아온 새들이 내려앉을 데를 잃습니다. 사일런트 밸리도 마찬가지여서, 그 숲이 없어지면 그 숲에만 있는 것들이 함께 없어집니다.
저는 개발하는 사람들을 악인으로 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잃게 될 것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내미는 것이었고, 목록이 구체적일수록 대화가 되었습니다.
Q6. 2026년의 습지는 기후 변화와 도시 확장 양쪽에서 눌리고 있습니다. 새의 이동 시기와 번식 시기도 흔들린다는 관찰이 이어지는데, 선생의 방법 가운데 지금도 쓸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날짜를 적는 일입니다. 같은 새가 언제 어디에 나타나는지를 여러 해에 걸쳐 적어두면,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할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 해의 기록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스무 해의 기록은 혼자서는 못 만듭니다.
세상이 나빠졌다고 외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몇 그루 심었다는 발표만으로 덮이는 것도 없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쌓인 기록이 남습니다.
제 시절에는 후원자를 찾아다니며 조사를 이어붙였습니다. 지금은 훨씬 많은 사람이 각자의 동네에서 그 일을 나눠 할 수 있으니, 조건은 제 때보다 낫습니다.
Q7. 열 권짜리 안내서는 선생이 떠난 뒤에야 완결됐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넘기고 싶으신지요?
제 이름이 붙은 새와 박쥐와 도마뱀붙이가 있고 보호구역과 기관에도 이름이 남았지만, 넘기고 싶은 것은 공책 한 권입니다.
오늘 창밖에 온 새의 이름과 날짜를 한 줄 적어보십시오. 그 한 줄이 쌓이면 몇십 년 뒤 누군가 그 습지를 지키는 근거가 됩니다. 저도 참새 한 마리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살림 알리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기자가 만들었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