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전환금융, 라벨과 심사 사이

곽동현·입력 2026. 06. 30. 오후 3:29:00
협약과 상품은 늘었지만 집행 인프라가 그 확대 폭을 따라가지 못한다
라벨은 한 겹, 그 아래 여신의 내용은 그대로일 수 있다
라벨은 한 겹, 그 아래 여신의 내용은 그대로일 수 있다 / ⓒ 브레스저널

탈탄소 설비로 바꾸겠다는 중소 제조업체가 은행 창구에 앉는다. 담당자는 어떤 설비를, 언제까지, 어느 배출 수준까지 낮추는지 묻는다. 답을 검증할 기준표와 그 답이 실제로 지켜졌는지 몇 년 뒤 확인할 절차가 창구 뒤편에 있는가. 전환금융은 협약 체결 건수로 성패가 갈리지 않고, 이 두 가지가 갖춰졌는지에 달려 있다.

농협금융이 1호 실행을 내놓은 뒤 은행권의 업무협약과 전용 지원 상품이 잇따르고 있다. 탈탄소로 가는 기업에 자금을 대는 통로 자체는 넓어지는 흐름이다. 통로를 통과할 자격을 가려내는 기능은 그만큼 자라지 않았다.

심사 기준과 사후관리 체계가 확보되지 않은 전환금융은 기존 기업여신에 녹색 표식을 덧입힌 재포장으로 끝난다.

전환금융은 갈색에서 녹색으로 이동하는 중인 사업에 돈을 대는 개념이다. 녹색으로 분류가 끝난 사업은 대상에서 빠진다. 그래서 심사가 어렵다.

지금 배출량이 높다는 사실 자체는 결격 사유가 되지 않고, 대신 감축 경로가 신뢰할 만한지를 따져야 한다. 감축 목표의 기준 연도와 단위, 중간 점검 시점, 미달 시 처리 방식이 여신 약정 안에 들어 있지 않다면 심사는 선언을 옮겨 적는 작업에 그친다.

반론은 강하다. 초기에는 시장을 키우는 일이 우선이고, 기준을 엄격하게 걸면 정작 자금이 필요한 중견·중소기업이 배제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감축 경로를 문서로 설계할 인력을 갖춘 곳은 대기업 쪽에 몰려 있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대답은 기준을 낮추는 쪽이어서는 안 되고, 기준을 대신 만들어 주는 쪽이어야 한다. 업종별 표준 감축 경로와 검증 서식을 공적 영역에서 제공하면, 기업은 컨설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심사를 통과할 언어를 갖게 된다. 기준을 지우면 자금은 흐르되 감축은 남지 않는다. 그때 손실을 떠안는 쪽은 몇 년 뒤 부실을 확인하는 은행과, 전환금융이라는 말 자체의 신뢰다.

사후관리는 더 취약한 고리다. 대출은 실행 시점에 한 번 평가되고 끝나지만, 감축은 5년, 10년에 걸쳐 일어난다. 실행 이후 배출 실적을 주기적으로 받아 목표와 대조하고, 이탈이 확인되면 금리나 한도를 조정하는 연동 장치가 없다면 전환이라는 이름은 실행 당일에만 유효하다.

협약 건수와 상품 출시는 앞으로도 늘 것으로 보인다. 전환금융으로 분류된 여신이 실행 이후 어떤 주기로 점검받는지, 목표에 미달한 사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공개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이 시장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점검 주기와 미달 처리 기준의 공개 여부가 확인 지점이다.

곽동현 기자 · Breath.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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