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그는 세계를 1000명이 사는 마을로 줄여 적었다. 인구도 소득도 자원도 마을 하나의 살림으로 옮기자 통계표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났다. 이 글은 훗날 100명 마을 이야기로 번져 여러 나라 말로 옮겨졌다. 세계 모형을 다루던 과학자가 세계를 가장 작게 줄여 설명한 순간이었다.
도넬라 헤이거 메도우즈(Donella Meadows)는 1941년 일리노이주 엘진에서 태어났다. 1963년 칼턴칼리지에서 화학 학사, 1968년 하버드에서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에서 스리랑카까지 1년에 걸친 여행 뒤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원이 되어,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창안한 제이 포레스터가 만든 학과의 연구팀에 합류했다.
1972년부터 29년간 다트머스대에서 가르쳤다. 1990년 월터 페인 과학교육상, 1991년 퓨 스칼라, 1994년 맥아더 펠로에 선정됐고, 2001년 뇌수막염으로 59세에 세상을 떠난 뒤 존 채피 환경상을 받았다. 미국 로마클럽협회는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들어 지속 가능성을 향한 활동에 수여한다.
Q1. 1968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에서 스리랑카까지 1년을 여행하고 돌아와 MIT로 갔습니다. 실험실 생물물리학자가 세계 모형 팀에 합류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여행에서 국경을 여럿 지났습니다. 땅이 마르는 방식, 사람이 몰리는 방식, 값이 오르는 방식이 나라마다 달랐지만 서로 얽혀 있다는 감각이 남았습니다. 실험대에서 분자 하나를 정밀하게 보는 훈련으로는 그 얽힘을 다루기 어려웠습니다.
돌아와 제이 포레스터의 팀을 만났습니다. 그는 컴퓨터 자기 기억장치를 만든 공학자였고, 시스템 다이내믹스라는 사고법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인구와 경제와 오염을 하나의 순환으로 묶어 계산에 올린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낯설었고, 화학과 생물물리학에서 배운 것이 거기서 쓸모가 있었습니다.
Q2. 1972년 로마클럽을 위해 World3라는 세계 컴퓨터 모형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성장의 한계』였습니다. 남편 데니스 메도우즈, 요르겐 랜더스, 윌리엄 베렌스 3세와 함께한 작업에서 대표저자로서 무엇에 가장 신경 썼습니까?
모형은 예언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구·경제·환경의 장기 추세가 서로를 어떻게 밀고 당기는지 계산했고, 여러 갈래의 미래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그 갈래들이 어떤 조건에서 갈라지는지 독자가 스스로 따라올 수 있게 쓰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책은 학술지 대신 서점으로 갔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머리기사가 되었고, 지구가 인간의 경제 팽창을 어디까지 떠받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그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에는 팀이 쓴 논문을 모아 남편과 함께 책으로 엮었습니다. 한 번 내놓고 옳았다고 우기는 대신 계산의 과정을 열어두는 편이 정직하다고 여겼습니다.
Q3. 『성장의 한계』는 종말을 예고했다는 비난과 계산이 틀렸다는 반박을 오래 받았습니다. 그 비판 가운데 타당했던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세계 모형이 다루는 변수는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 전체를 몇 개의 흐름으로 압축하면 지역 사이의 차이와 기술의 세부는 뭉개집니다. 그 점을 짚은 비판은 정당했고, 이후 작업에서는 모형이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를 함께 밝히며 설명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비난도 있었습니다. 한계를 말하면 겁을 주는 것이고, 겁을 주면 사람을 마비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붕괴가 정해졌다고 말한 적은 없고, 지금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모형을 신탁처럼 떠받드는 태도와 사기라고 부르는 태도는 둘 다 계산을 오해합니다. 계산은 조건이 바뀌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Q4. 비판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어떻게 버텼습니까. 1982년 남편과 함께 만든 발라톤 그룹은 그 시기와 겹칩니다?
논쟁이 격해질수록 혼자 방어하는 일은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저는 방어 대신 연결을 택했습니다. 자원 이용, 환경 보전, 시스템 모형, 지속 가능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 묶었고, 헝가리 발라톤 호수에서 해마다 가을에 모였습니다.
공식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발라톤 그룹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서는 각자의 나라에서 겪은 실패를 꺼내놓았습니다. 실패를 나누는 모임이 있으면 비난을 견디는 힘이 생깁니다.
글도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세계의 사건을 시스템 관점으로 읽는 주간 칼럼을 오래 썼고, 그 글들은 뒤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묶였습니다. 매주 마감이 있는 사람은 절망에 오래 머물 시간이 없습니다.
Q5. 1996년 지속가능성연구소를 세우고 버몬트주 하틀랜드의 코브힐에 공동주거와 유기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세계 모형을 하던 사람이 왜 농장이었습니까?
계산과 생활이 따로 놀면 계산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지구 시스템 연구와 지속 가능한 생활의 실제 사례를 한곳에 두고 싶었고, 코브힐은 그 시도였습니다.
거기서는 흙과 물과 사람의 노동이 겨울을 나는 방식이 눈에 보입니다. 세계 모형에서 하나의 변수로 압축되는 것들이 실제로는 이웃과의 협의와 돌려짓기와 헛간 수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감각이 없으면 지속 가능성은 표어로 굳습니다.
이 연구소에서 지속가능식품랩과 클라이밋인터랙티브 같은 조직이 갈라져 나왔습니다. 2011년 도넬라메도우즈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2016년부터는 시스템변화아카데미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Q6. 1999년 발표한 「지렛대점: 시스템에 개입하는 지점들」은 지금도 널리 읽힙니다. 2025년의 기후·자원 논의에 이 글을 대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그 글은 개입의 종류를 효과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늘어놓은 목록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가장 손쉬운 곳, 수치를 조금 조정하는 곳부터 손을 댑니다. 세율을 몇 퍼센트 올리고 기준을 조금 강화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효과가 큰 개입은 더 안쪽에 있습니다. 시스템이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그 목표를 떠받치는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가 훨씬 강한 지렛대입니다. 성장 자체를 목표로 둔 채 배출만 줄이려 하면 시스템은 줄인 만큼을 다른 곳에서 되찾아옵니다.
끝났다고 선언하는 말과, 상표만 초록으로 바꾸고 계산은 그대로 두는 말을 저는 똑같이 경계합니다. 둘 다 사람에게서 개입할 여지를 빼앗습니다.
Q7. 다음 세대가 당신에게서 가져갈 것이 하나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세계를 1000명의 마을로 줄여 적었을 때, 큰 것을 작게 만들면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독자가 할 수 있는 일도 그만한 크기입니다. 생활에서 반복되는 순환 하나를 골라 그 고리를 종이에 그려보는 일입니다.
고리를 그리면 어디를 건드려야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코브힐의 겨울 헛간에서 저는 그 일을 해마다 되풀이했습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도넬라 메도우즈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기자가 만들었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