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 지부가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I 확산에 대응할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세 지부는 기자회견 후 디지털 전환기 국내 공급망과 일자리 보호 방안을 논의할 노정·노사정 협의체 구성, 완성차 국내 생산 유지 확대 방안 등을 담은 노정교섭 요구안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벌어지던 논쟁이 제도 협상 테이블로 옮겨온 장면이다.
노조는 해고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박상만 금속노조 위원장은 자본이 자동화·디지털화·AI 투자에 집중하면서 결원이 생겨도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고 단체협약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을 내보내지 않고 빈 일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 고용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해외 연구들도 비슷한 곳을 가리킨다. 스탠퍼드대 디지털 이코노미 랩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석탄광의 카나리아' 보고서는 개발자·서비스업처럼 AI 노출도가 높은 분야에서 22~25세 취업자 수가 2022년 말 이후 다른 직종 대비 평균 16% 줄었다고 분석했다. AI 노출도란 업무 상당 부분이 현재 기술로 처리 가능한 정도를 뜻한다. 같은 분석에서 고숙련 경력직과 건강보조원·유지보수 기사·택시 운전사 같은 현장 직종의 고용은 유지되거나 늘었다.
하버드대 보고서 '생성형 AI, 경력자에게 유리한 기술 변화'는 근로자 6만2000명의 이력을 분석해 2015년부터 2022년 중반까지 신입과 경력직 고용이 나란히 늘었다고 밝혔다. 그 흐름이 갈라진 시점은 2023년이다. AI를 도입한 기업의 사회 초년생 인원은 2023년 1분기 이후 6개 분기 만에 9% 감소한 반면 경력직 고용은 대체로 영향받지 않았다. 두 보고서는 기준과 대상이 달라 수치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줄어드는 쪽이 입구라는 점에서는 겹친다.
국내 진단은 조금 더 신중하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APEC 미래 일자리 포럼' 주제발표에서 한국 기업 대다수가 AI가 업무의 최대 10%만 대체한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광범위한 대체는 관측되지 않지만, AI 노출 위험이 높은 직종에서 2023년 이후 생성형 AI 도입이 빨라지며 청년 고용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OECD 전체로 보면 AI의 고용 영향이 부정적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명시적이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과거 예측과 견줘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한국고용정보원·카이스트·서울대 등 9개 기관 소속 AI·로봇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10년 안에 1575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청소원과 주방보조원은 모두 없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감소가 나타난 쪽은 청소나 조리가 아닌 사무·개발 직군의 신입이었다. 일자리 총량이 줄기보다 특정 연령대의 진입로가 좁아지는 형태로 변화가 왔다.
완성차 노조가 협의체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로봇 계획도 있다. 현대차는 올해 1월 미국 CES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고, 2028년 미국 공장 생산 공정 투입이 거론된다. AI 기반 무인공장 'DF247' 구상도 함께 언급된다. 이종철 현대차지부장은 현대차의 미래 계획에 로봇과 자동화만 있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다며, 산업전환에 따른 일자리 문제와 직무교육, 영세중소사업장 고용 방안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이 지부장은 고용위기가 영세·중소사업장의 단순 분류·조립 공정과 하청 노동자를 가장 이르게 덮칠 것으로 봤다. 그래서 요구도 고용 보장에 더해 직무교육 지원과 직무전환 기간의 임금 보전으로 이어졌다. 안규백 한국지엠 지부장은 완성차 한 곳이 흔들리면 수백개 부품사와 수십만 노동자·가족의 삶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협의체가 실제로 꾸려질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답했고,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어떤 틀에서 마주 앉을지도 정리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전환 관련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두고 노사 의견을 수렴해 세부 추진과제를 만드는 중이다. 안젤리카 OECD 선임 자문관은 포럼 기조연설에서 정부 기본계획에 일자리 영향 관측과 사회적 보호, 고용 안전망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 4대 1로 졌다. 10년 뒤 같은 장소에서 그는 AI 에이전트에 음성으로 지시해 30분 만에 바둑 앱을 만들었고, 자신이 만든 AI와 둔 대국에서는 61수 만에 돌을 던졌다. 도구를 다루는 사람과 도구에 밀려나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그 두 장면에 다 들어 있다. 지금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것은 그 거리를 어떻게 좁힐지, 그 비용을 누가 낼지의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