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줄여서 돌봄통합지원법이 3월 27일 시행됐다. 같은 날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본사업에 들어갔다. 노쇠와 질병으로 여러 도움이 한꺼번에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 의료 필요도가 높은 지체·뇌병변 등 심한 장애인이 대상이다. 병원과 시설로 옮겨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법의 문장으로 적힌 첫 사례다.
절차는 단순한 편이다. 읍면동 주민센터나 시군구청, 국민건강보험공단 가운데 편한 곳 한 군데에 신청하면 된다. 이후 전문가가 일상생활 기능과 건강상태 등 58개 항목을 살펴 종합판정을 하고, 보건의료·건강관리·장기요양·일상생활돌봄 4개 분야 30종 서비스 중에서 그 사람에게 맞는 조합을 설계해 연결한다. 목욕과 식사, 병원 동행, 문턱 낮추기와 손잡이 설치까지 한 창구에서 이어진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시행 하루 전인 26일 전국 229개 모든 시군구에 통합돌봄 전담조직과 인력 배치를 마쳤다고 밝혔다. 제도는 도입기(2026~2027년), 안정기(2028~2029년), 고도화기(2030년 이후) 3단계로 설계됐다. 도입기가 안고 있는 대상 규모는 입원·입소 경계선에 선 노인 128만명,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 146만명, 65세 미만 중증 장애인 15만명으로 잡혀 있다.
규모를 감당할 재원은 그만큼 두텁지 않다. 정부가 올해 통합돌봄에 편성한 예산은 914억원으로 제시되는데, 기초자치단체에 실제로 내려가는 몫은 인건비 등을 빼면 620억원이라는 집계도 함께 나온다. 산정 범위가 서로 달라 하나로 포개기 어렵다. 어느 쪽으로 세든 지자체 한 곳이 쓸 수 있는 사업비는 평균 3억원에 못 미친다.
재원이 흩어져 있는 사정도 겹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예산,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으로 나뉜 돈을 한 갈래로 모으는 돌봄기금 신설은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여러 주머니에서 조금씩 꺼내 한 사람의 하루를 채우는 방식이 현장에 그대로 넘어온 셈이 됐다.
시행을 하루 앞둔 국회 앞마당에서 사람 문제가 터져 나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26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돌봄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 노조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회견은 남인순·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집으로 찾아가는 돌봄은 결국 누군가가 그 집 계단을 오르는 노동으로 이뤄진다.
시행 당일에는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통합돌봄시대 개막, 사회복지특별위원회의 역할' 세미나를 열었다. 김원일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2026년 돌봄정책의 구조적 전환'을, 이용재 호서대 교수가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서비스 강화'를 발제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은 서면으로 축사를 보냈다.
제도의 폭을 넓히는 열쇠는 시행령이 쥐고 있다. 시행령은 대상을 65세 이상 고령자 또는 장애 정도가 심한 등록장애인으로 한정했고, 그 밖의 사람을 대상에 넣으려면 지자체가 보건복지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지역이 젊은 중증 환자나 돌봄이 끊긴 1인 가구를 찾아내도 이 협의를 거치기 전에는 곧바로 품기 어렵다. 법률은 대상자 발굴과 정책 수행을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는데, 공공과 민간이 이 일을 어떻게 나눠 맡을지는 지역마다 지금부터 그려진다.
기대를 걸 만한 신호도 있다. 앞서 진행된 시범사업에서 가족 등 돌봄을 맡아온 이들 가운데 부양 부담이 줄었다고 답한 비율이 75.3%로 파악된다. 돌봄이 한 가족의 사적인 몫에서 지역의 일로 옮겨갈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응답이다.
도입기는 2027년까지다. 그 2년 동안 예산의 크기와 돌봄노동자의 조건이 어디까지 채워지는지가 이 법의 실제 얼굴을 만든다. 지금 확실한 것은 하나다.
어제까지는 시설 입소 상담부터 시작하던 이야기가, 오늘부터는 읍면동 창구에서 "어떻게 하면 이 집에서 계속 지내실 수 있을까"로 시작한다. 65세 이상 부모나 이웃의 하루가 위태롭다면, 주민센터와 건강보험공단 지사 어느 쪽에서든 신청서를 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