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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지붕이 상징이 된 날, 담장 밖은 조용하지 않았다

루츠·입력 2026. 03. 25. 오후 7:56:00
세계유산위원회 엠블럼 공개와 세운4구역 경관 갈등이 겹친 하루
좌우로 길게 뻗은 종묘 정전의 기와지붕
좌우로 길게 뻗은 종묘 정전의 기와지붕 / 사진 지홍 민 · CC BY-SA 4.0

국가유산청이 25일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공식 상징을 공개했다. 종묘 정전의 기와지붕 형태와 색채를 소재로 삼아, 좌우로 낮게 펼쳐지는 지붕 곡선을 그대로 도안에 옮겼다. 국가유산청은 이 도안이 연결(Continuity)·평화(Peace)·협력(Collaboration) 세 가지 메시지를 담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이코모스(ICOMOS) 한국위원회는 누리집에 성명을 올려 종묘 앞 세운4구역 개발이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없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파악된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는 7월 19일 개회식으로 시작해 29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한국이 이 회의를 여는 것은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뒤 38년 만에 처음이다. 회의의 얼굴로 종묘가 뽑힌 데에는 내력이 있다. 종묘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세계유산으로 목록에 올랐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정전 안에는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를 비롯한 신주가 열아홉 개의 방, 곧 신실에 나뉘어 놓여 있다. 방이 하나씩 늘 때마다 건물도 옆으로 늘어났고, 그렇게 이어 붙인 결과가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 가운데 가장 긴 몸체다. 길이는 101m로 전해진다.

정전 앞 월대에 서면 그 길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회색 박석이 발밑에서 서걱거리고, 눈은 지붕의 검은 기왓골을 따라 좌우로 천천히 미끄러진다. 높이로 압도하는 대신 옆으로 길게 눕는 건축이어서, 하늘이 넓게 남는다. 엠블럼이 붙잡으려 한 것도 그 남겨진 하늘이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옛 사당과 도심이 마주 선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옛 사당과 도심이 마주 선다 / ⓒ 브레스저널

담장 밖 사정은 다르다.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재개발을 놓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3월 16일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허가 없이 사업 부지 열한 곳에서 최대 약 38m 깊이로 시추했다며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문화유산위원회도 3월 19일 이 무단 시추를 엄중히 지적했다.

서울시는 1월 9일 종묘 외대문 밖에서 예정 건물과 비슷한 높이의 애드벌룬을 띄웠다. 높이가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정전 안에서의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서울시 쪽 설명이다.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국가와 국가유산청 관계자를 상대로 16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재판은 진행 중이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가 이 사안에 공식 입장을 낸 것은 2025년 11월에 이어 두 번째다.

엠블럼을 만드는 손과 담장 밖을 지키는 손은 같은 기관에 달려 있다. 국가유산청은 다음 달 이 도안을 활용한 공식 홍보영상을 선보이고, 기념품을 비롯한 콘텐츠도 개발할 계획이다. 도안을 각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에 배포해 범정부 홍보를 독려하는 방안도 준비되고 있으며, 허민 청장 체제에서 범정부 태스크포스 회의도 열렸다. 상징을 널리 퍼뜨리는 일과 그 상징의 실물이 놓인 하늘을 지키는 일은 7월까지 나란히 굴러가야 한다.

7월 19일이면 각국 대표단이 벡스코에 모인다. 그들이 회의장 곳곳에서 마주칠 검은 지붕 도안의 원본은 서울 종로 한복판에 그대로 있고, 시민 누구나 예약해 그 앞을 걸을 수 있다. 월대에 올라 정전 지붕 너머를 한 번 올려다보면, 지금 무엇이 다투어지고 있는지가 설명 없이 보인다. 넉 달 뒤 손님들이 볼 하늘도 그 하늘이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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