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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38m 구멍, 600년 하늘선을 묻다

루츠·입력 2026. 03. 17. 오후 1:10:00
무허가 시추 고발과 유네스코 경고가 겹친 세운4구역
종묘 정전의 낮고 긴 지붕선 너머로 도심이 겹친다
종묘 정전의 낮고 긴 지붕선 너머로 도심이 겹친다 / 사진 지홍 민 · CC BY-SA 4.0

국가유산청이 3월 16일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를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은 같은 날 관할 서울 혜화경찰서에 접수됐다. SH가 국가유산청장 허가 없이 세운4구역 부지 11개 지점을 뚫었고, 구멍 깊이는 약 38m에 이른다. 종묘 정전의 낮고 긴 지붕선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추는 3월 11일부터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국가유산청은 13일 현장을 조사한 뒤 모든 현상변경 행위를 멈추게 하고 반입된 중장비를 부지 밖으로 물렸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1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 사실과 법적 조치를 공개했다. 매장유산법 제31조 제2항은 확인됐거나 발굴 중인 매장유산의 현상을 변경한 자에게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정하고 있다.

세운4구역은 서류상 발굴이 끝나지 않은 땅이다. SH의 발굴조사 완료 신고도, 국가유산청장의 완료 조치 통보도 없어 법적으로 '매장유산 유존지역'으로 관리된다. 2022년부터 이어진 조사에서 조선시대 도로 체계의 흔적과 건물터, 배수로, 마을 입구 시설인 이문(里門) 자취가 드러났다. 건물터는 590여 동, 우물은 199기로 집계됐다.

흙 아래에는 소뼈가 묻힌 수혈도 있었다. 최소 일곱 마리분으로, 도살과 제례가 뒤섞인 한성부 뒷골목의 생활 냄새가 그대로 남은 구덩이다. 국가유산청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현재 7.5m 깊이까지 층층이 유구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 층을 관통해 38m를 내려간 구멍이 열한 개 생긴 것이다.

보존 절차도 멈춰 선 상태다. SH가 내놓은 매장유산 보존방안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에서 구체성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보류됐고, 보완한 자료는 그 뒤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시는 해명자료를 내 정밀 발굴 현장조사 완료와 복토 승인을 받아 시행한 것이며 법 위반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양측 설명이 정면으로 갈린다.

7.5m 유구층을 지나 38m 아래까지 내려간 시추공
7.5m 유구층을 지나 38m 아래까지 내려간 시추공 / ⓒ 브레스저널

하늘선을 둘러싼 대치는 더 오래됐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2018년 합의한 11.9m 높이 제한은 지금 유효하지 않고, 최고 145m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3월 9일 종묘 입구에서 예정 건물과 비슷한 높이의 애드벌룬이 떠올랐던 것으로 파악된다. 정전 지붕 위로 무엇이 얼마나 솟는지를 눈으로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3월 14일 서한을 보내 세운지구 개발을 밀어붙일 경우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시가 인허가 절차에 앞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겠다는 확인 서한을 3월 안에 회신하지 않으면,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 종묘를 보존 의제로 올리거나 공식 현장실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통보가 함께 왔다. 종묘는 1995년 석굴암·팔만대장경과 나란히 한국 최초로 등재된 유산이다. 서울시는 내년 한양도성의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평가 기간을 1년으로 줄인 절차를 만들어 제안했으나 서울시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고, 두 차례 사전 조정 회의는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국가유산청은 오세훈 서울시장, 정문헌 종로구청장, 허민 청장이 마주 앉는 3자 논의를 요구했다. 지난달에는 국무총리 소속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이 사안을 안건으로 올려달라는 공문을 냈고 3월 10일 공개했다. 조정위 신청은 2022년 김포 장릉 아파트 건에 이어 두 번째인데, 그때는 소송이 진행되면서 각하됐다.

일정은 촘촘하다. 서울시는 3월 19일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열 예정이고, 4월 중 사업시행인가를 마칠 것으로 국가유산청은 보고 있다. 회신 시한인 3월 말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 남짓이며, 그 결과는 확정되지 않았다.

종묘 정전 앞마당은 넓은 돌바닥과 낮은 지붕만으로 하늘을 크게 비워두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그 비어 있음이 600년 제례의 형식 자체였다. 지금 담장 너머 땅에는 흙을 덮은 시추 지점이 열한 곳 있고, 그 아래 7.5m 두께의 옛 골목이 여전히 잠들어 있다. 종묘는 화요일을 뺀 날에 문을 여니, 정전 마당에 서서 남쪽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볼 만하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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