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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아래 129칸, 북한산성 행궁이 말을 걸다

루츠·입력 2026. 03. 02. 오후 5:52:00
고양시 학술대회 사흘 앞, 열네 해 발굴이 세계유산 심사대에 오른다
건물은 사라지고 기단만 남은 북한산성 행궁지
건물은 사라지고 기단만 남은 북한산성 행궁지 / ⓒ 브레스저널

사흘 뒤인 3월 5일 오후 두 시, 고양특례시가 킨텍스 제2전시장에 연구자들을 불러 모은다. 이름은 '북한산성 행궁지 발굴성과 학술대회'다. 열네 해에 걸친 땅속 조사에서 나온 것들을 한자리에 펼쳐놓는 것이 이날의 일이며, 이는 '한양의 수도성곽'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가 접수된 뒤 열리는 첫 학술 행사이기도 하다.

행궁이 세워진 해는 숙종 38년, 1712년이다. 도성이 무너졌을 때 왕이 옮겨와 정무를 이어가기 위한 별궁이었으니, 이곳의 성격은 처음부터 비상시의 통치였다. 왕과 왕비가 머무는 내전,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외전을 합쳐 129칸. 산속에 궁궐 하나를 통째로 옮겨 심은 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목조 건물들을 지운 것은 물이었다. 1915년 대홍수가 계곡을 타고 내려와 건물을 흙과 돌 아래 덮었고, 그 뒤로는 기단과 초석만 남았다. 화강암 표면에 낀 이끼, 비 온 뒤 흙에서 올라오는 축축한 냄새, 발밑에서 부스러지는 기와 조각. 사적 지정은 2007년에 이뤄졌다.

땅을 여는 작업은 2011년 시굴에서 출발했다. 이듬해부터 지난해까지 정밀 발굴이 여섯 차례 반복됐고, 그 사이 건물이 어떻게 앉았고 어떤 방식으로 쌓아 올려졌는지에 관한 자료가 한 겹씩 두꺼워졌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그 축적분이 정리돼 나올 것으로 파악된다. 확인된 건물지가 몇 동인지, 129칸 가운데 어디까지 윤곽이 잡혔는지는 당일 발표를 들어야 알 수 있다.

등재를 노리는 이름은 '한양의 수도성곽'이다. 행정의 중심인 한양도성, 군사 방어를 맡은 북한산성, 둘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을 따로 떼지 않고 하나의 방어 체계로 묶었다. 행궁은 이 개념의 접점에 해당한다. 국왕이 머무는 궁이면서 동시에 요새 안의 시설이라는 이중성이 있어야, 산성이 단순한 성벽 이상이었다는 설명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도성·산성·연결 성벽을 한 몸으로 묶은 방어 체계
도성·산성·연결 성벽을 한 몸으로 묶은 방어 체계 / ⓒ 브레스저널

이날 기조강연은 송인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맡는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가 '북한산성과 한양의 수도성곽의 세계유산가치'를 짚은 뒤, 세 갈래 발표가 이어진다. 신영문 서울시 세계유산등재팀장이 숙종대 행궁 건립의 물력 조달과 변통을, 이승연 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실장이 조선 후기 행궁의 건축제도와 기술을,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책임연구원이 보존·복원과 활용 방안을 다룬다.

세 번째 발표 제목에 긴장이 걸려 있다. 터를 그대로 보여줄 것인가, 건물을 다시 세울 것인가. 복원은 관람객에게 형태를 돌려주지만 땅속에 남은 원래의 흔적을 덮는다. 종합토론은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서봉수 백두문화연구원 원장과 조재모 경북대 교수, 한욱빈 한국건축안전센터 소장이 참여한다.

시 관계자는 이곳을 전란기 국왕의 통치 공간이자 군사적 요충지라는 두 얼굴로 설명하면서, 학술적 검증 위에서 보존·복원의 가닥을 잡겠다고 했다. 이동환 고양특례시장이 이끄는 시로서는 등재 심사까지 남은 시간이 근거를 쌓을 기간이 된다. 심사는 2027년 제49차 세계유산위원회 몫이다.

대회장에서 나오는 결론이 무엇이든, 그것을 확인하려면 결국 걸어 올라가 봐야 한다. 북한산성 안쪽, 계곡물 소리가 들리는 경사지에 기단석이 줄지어 있다. 그 위에 129칸을 얹어보는 일은 발표문이 해주지 못한다. 기단석 옆에 선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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