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1일 기준 국외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은 12만1143건, 세부 수량으로 25만6190점으로 집계됐다. 일본·미국·독일 등 29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801곳을 조사한 결과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지난 18일 이 수치를 내놓았다. 1년 전 24만7718점보다 8472점이 늘었다.
가장 많은 곳은 일본이다. 11만611점으로 전체의 43.2%를 차지한다. 그 뒤로 미국 6만8961점, 독일 1만6082점, 영국 1만5417점 순이다. 국가별 비중으로는 미국이 26.9%, 독일 6.3%, 영국 6.0%로 이어진다.
이 집계가 전부는 아니다. 소장 정보나 취득 경위를 공개하지 않는 곳이 있어 실제 규모는 집계치보다 클 것으로 당국과 학계는 본다. 통계가 늘어난다는 것이 곧 유출이 늘었다는 뜻도 아니다. 조사의 손이 닿는 범위가 넓어지면 오래전에 떠난 것들이 뒤늦게 목록에 오른다.
흩어진 경로도 하나가 아니다. 19세기 후반 열강의 침탈과 20세기 초 식민통치기의 도난·약탈이 큰 줄기지만, 정상적인 거래와 수집, 기증과 선물로 바다를 건넌 물건도 함께 섞여 있다. 이 뒤엉킴이 환수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다. 약탈이 확인된 것과 값을 치르고 넘어간 것을 같은 언어로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12년 7월 설립됐다. 설립 이듬해 첫 조사에서 확인된 수량은 15만2915점이었고, 2021년 처음 20만점을 넘어섰다. 그 앞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7만6143점, 2009년 10만점 돌파의 기록이 있다. 십수 년 사이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난 목록은 유물이 그만큼 빠져나갔다기보다,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낸 속도가 그만큼 빨랐다는 뜻에 가깝다.
실제로 돌아온 것은 2026년 1월 기준 1299건 2855점이다. 25만점이 넘는 전체 수량과 견주면 1퍼센트를 조금 넘는다. 방식을 보면 기증이 1249건으로 절대다수이고, 경매나 협상을 통한 구매는 49건에 그친다.

되찾음은 대개 값을 치러 이겨낸 결과가 아니었다. 소장자의 마음이 돌아선 덕이었다.
지난해에는 관월당이 건물 전체 형태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옮겨졌던 조선 후기 목조 건축물로, 6월 국내 땅을 다시 밟았다. 기둥과 서까래가 해체된 부재로 실려 갔다가 다시 세워지기까지 백 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뜻이다. 같은 해 경복궁 선원전 편액, 고려시대 사경, 조선 전기 불화도 제자리를 찾았다.
2020년에는 앙부일구가 미국 경매에서 낙찰돼 국내로 들어왔다. 반구 안쪽에 새겨진 눈금 위로 그림자가 지나가며 시간을 읽던 청동 해시계다. 해가 뜨는 위도가 다른 땅에서 이 물건은 시간을 알려주지 못했고 형태만 남은 조형물로 놓여 있었다. 돌아온다는 것은 쓰임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해 7월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약탈이 확인된 유산은 반드시 되찾아오겠다고 밝혔다. 전체 25만여 점 가운데 무엇이 약탈이고 무엇이 정상 반출인지를 가르는 수치는 제시된 적이 없다. 일본에 있는 11만여 점의 기관별 내역도 마찬가지다. 요구의 언어가 정교해지려면 목록부터 정교해져야 한다.
한편으로 흩어져 있음이 반드시 소실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박물관,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중국 고궁박물원은 한국 문화유산을 상설로 보여주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관람객이 읽는 설명에 어떤 경위로 이곳에 왔는지가 적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보존의 명분과 반환의 요구는 이 지점에서 부딪힌다.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돌아온 2855점이다. 관월당은 다시 조립되어 처마 아래 그늘을 만들고 있고, 선원전 편액의 글씨는 여전히 나무결 위에 남아 있다. 국립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이들을 마주 보면 25만이라는 총계는 물러나고 하나의 물건이 겪은 백 년이 보인다. 목록은 매년 갱신되지만, 돌아온 것들의 시간은 한 점씩만 회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