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오후 세 시의 청년센터를 떠올려 본다. 새로 깐 마루가 있고, 회의실은 예약제로 돌아가고, 벽에는 프로그램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문을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같은 동네 청년이 수만 명 산다. 그래서 이 글은 무엇을 더 만들지 고르는 일보다, 만들어 둔 것이 왜 닿지 않는지를 세자고 말한다.
지자체마다 2026년 청년정책 시행계획이 확정되는 시기다. 해마다 사업 수가 늘고 예산 항목이 붙고 새 공간이 문을 연다. 청년 십만 명이 사는 도시에서 한 사업이 만나는 인원이 400명이라면, 그 사업은 250명 가운데 한 명에게 닿는다. 나머지 249명에게 그 사업은 없는 것과 같다.
정책이 나빠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좋은 프로그램일수록 정원이 작고, 정원이 작을수록 참여자와 깊이 만날 수 있다. 깊이 만났으니 사업은 이듬해에도 살아남고, 살아남은 사업은 다시 작은 정원으로 운영된다. 잘 굴러가는 사업과 널리 닿는 사업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성과를 재는 잣대가 바뀌어야 한다. 사업을 몇 개 열었고 예산을 얼마나 썼는지 대신, 대상이 되는 청년 가운데 몇 퍼센트를 만났는지를 계획서 첫 줄에 적는 것이다. 도달률이 1퍼센트에 못 미친다면 그것은 잘 만든 시범 사업일 수는 있어도 정책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담당자를 탓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편 논리는 만만치 않다. 무엇이든 만들어 두어야 필요가 드러나고, 작게 시작한 사업이 몇 해 뒤 뿌리를 내리는 사례도 있다. 처음부터 십만 명을 상대하는 정책은 대개 현금을 나누는 일로 수렴하고, 그것만으로 청년의 하루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오래됐다. 둘 다 타당한 말이다.

그럼에도 되물을 것이 있다. 평일 낮에만 문을 여는 프로그램에 교대 근무를 하는 청년이 올 수 있는가. 서류를 대여섯 장 갖춰야 하는 지원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는가.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것이라는 말은, 그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참말이 된다.
닿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평범하다. 공고가 올라오는 화면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공고는 없는 것과 같고, 한 번 떨어져 본 사람은 다음 공고를 건너뛴다. 몰라서 못 쓰는 경우와, 알아도 자격이 애매해 접는 경우는 푸는 법이 다르다. 두 경우를 갈라서 세어 본 지역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닿지 않는 쪽에는 얼굴이 있다. 학교를 마치고 고향에 남은 사람, 몇 달째 이력서를 고쳐 쓰는 사람,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설명회 시간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격을 증명해야 할 대상이기 전에, 정책이 찾아가야 할 이웃이다.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계획은 확정되면 공개되고, 누구든 읽을 수 있다. 올해 계획서를 펼칠 때 두 값을 나란히 놓고 보면 된다. 이 사업이 상대하는 청년 인구가 얼마이고, 지난해 그중 몇 명을 만났는가. 빈 의자를 세는 대신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세는 계획서가 한 장이라도 나온다면, 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해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