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사라지는 것은 자리가 아니라 첫 계단이다

미디어·입력 2026. 02. 05. 오후 12:41:00
총량 통계로는 안 잡히는 AI 고용 충격, 진입 경로부터 다시 짜야
사다리는 남았는데 첫 계단이 없어진 노동시장
사다리는 남았는데 첫 계단이 없어진 노동시장 / ⓒ 브레스저널

사무실 인원표는 작년과 비슷하다. 자리도, 팀 이름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매년 봄 그 층에 들어오던 신입 두세 명이 올해는 없다는 사실 하나다. 통계로 잡히지 않는 변화는 대개 이런 모양으로 온다.

국제기구와 다보스 무대에서 나온 AI 고용 경고가 겹쳤고, 국내에서는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는 스포츠면을 접었고, 법조 쪽에서는 갓 자격을 딴 이들의 취업 문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각각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한 지점에서 만난다. 조직에서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이 경력자의 위치가 아니고 초년생의 자리라는 점이다.

여기서 이 글의 주장은 분명하다. AI 고용 충격은 '전체 일자리 몇 % 감소'라는 총량 지표로는 포착되지 않으며, 정책의 우선순위는 기존 인원의 고용안정을 법으로 묶는 쪽이 아니라 사람이 직업으로 들어오는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쪽에 있어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자동화가 잘 먹히는 일은 판례 1차 검색, 경기 결과 정리, 회의록 요약, 기초 코드 작성처럼 정답 범위가 좁고 반복적인 업무다. 그런데 이 업무들은 공교롭게도 신입이 3년 동안 손에 익히며 판단력을 쌓던 훈련 과정이기도 했다. 훈련장이 사라지면 5년 뒤의 중간 관리자도, 10년 뒤의 전문가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총원은 그대로여도 아래층이 비면 조직은 늙는다
총원은 그대로여도 아래층이 비면 조직은 늙는다 / ⓒ 브레스저널

반론은 강하다. 사라진 입구는 늘 새 입구로 대체돼 왔다는 반론이다. 타자수와 전화교환수가 사라진 지점에 이전에 없던 직무가 생겼고, 노동시장은 그때마다 새 계단을 만들어냈다. 규제로 위치를 묶으면 기업은 채용 자체를 줄여 오히려 신입이 더 손해를 본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번이 다른 이유는 속도와 방향에 있다. 과거의 기술은 대체로 숙련의 아래쪽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퍼졌지만, 지금의 도구는 초급 업무를 우선 흡수하고 위로 올라간다. 새 직무가 생기더라도 그 직무 역시 경력 3년 이상을 요구하는 형태로 열리면,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대체의 총량은 맞아떨어져도 세대별 배분은 어긋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해고를 막는 장치보다 입구를 다시 만드는 장치다. 신입 채용을 몇 명 유지했는지를 세는 지표, 기업이 초년 인력을 훈련시킬 때 그 비용을 나눠 지는 구조, 자격증이 아닌 실제 업무 이력을 쌓게 하는 공공 프로젝트 같은 것들이다. 발의된 법안이 고용 총량을 지키는 쪽으로만 다듬어진다면 정작 비어가는 층은 그대로 남는다.

지켜볼 지점은 올해 하반기 공채 공고의 문장이다. '경력 무관'이라고 적힌 지점이 몇 개인지, 그리고 그 위치에 배정된 사수가 실제로 있는지. 채용 규모라는 큰 집계보다 그 두 줄이 앞으로 5년의 노동시장을 더 정확히 보여준다. 신입이 실수할 권리를 조직이 계속 예산에 넣어두느냐, 도구에게 넘기고 지워버리느냐가 사람들의 다음 십년을 가른다.

미디어 기자 · Breath.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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