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그린스완』, ESG를 만든 사람의 자기 채점표

페이지·입력 2026. 08. 26. 오후 12:09:00
공시 의무화 논의 속에서 다시 읽는 지속가능성 30년의 결산
『그린스완』은 예상 밖의 좋은 충격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그린스완』은 예상 밖의 좋은 충격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 사진 Calistemon · CC BY-SA 4.0

ESG는 성공한 개념인가, 실패한 개념인가. 공시 의무화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이 질문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관심이 쏠린 사이, 그 제도가 딛고 선 개념을 점검하는 작업은 뒤로 밀렸다. 『그린스완』(더난출판사, 2025)은 미뤄둔 점검을 개념의 제안자 본인이 수행한 책이다.

저자 존 엘킹턴은 기업 경영에 경제·사회·환경 세 축을 함께 놓는 사고를 오래 밀어붙인 인물이다. 오늘날 ESG라는 약어로 통용되는 접근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당사자가 수십 년 뒤 성적표를 스스로 매긴다는 설정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자기비판을 표방한 책은 대개 두 갈래로 흐른다. 개념을 방어하거나, 시장이 개념을 오용했다고 탓하거나. 이 책이 택한 결은 더 불편한 쪽이다. 제안자가 의도한 용법과 시장이 실제로 소비한 용법의 간극을 문제 삼는 순간, 책임의 일부는 제안자에게 돌아온다.

이 대목이 국내 독자에게 걸리는 지점은 분명하다. 공시 의무화는 기업에 측정과 보고의 부담을 지운다. 측정 항목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 항목들이 실제 환경·사회 성과와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제도 설계자가 개념의 한계를 모른 채 지표만 늘리면, 늘어나는 것은 보고서 분량이지 성과가 아니다.

그린스완 · 존 엘킹턴 · 더난출판사
그린스완 · 존 엘킹턴 · 더난출판사 / 표지 · 더난출판사

제목이 가리키는 대상도 같은 맥락에 있다. 예측하지 못한 파국을 뜻하는 검은 백조의 반대편에서, 예측하지 못한 급격한 개선의 가능성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산업 전환을 다루는 논의는 대체로 비용과 위험에 무게를 싣는데, 이 책은 반대 방향의 급변도 같은 비중으로 다룰 것을 요구한다. 전환을 지출로만 계상하는 재무 관점에는 낯선 요구다.

책의 힘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서 나온다. 외부 비평가가 ESG의 허점을 지적한 책은 이미 여럿이고, 대체로 논지가 예측 가능하다. 개념을 만든 사람이 직접 실패 항목을 꼽을 때는 방어할 수 없는 대목까지 목록에 오른다. 같은 지적이라도 중량감이 다르게 실린다.

얇아지는 곳도 짐작된다. 자기비판은 진단에서 힘을 발휘하지만 처방으로 넘어가면 근거의 밀도가 떨어지기 쉽다. 새로운 이름을 하나 더 제안하는 방식이 앞선 개념의 오용을 막는다는 보장은 없다. 개념의 수명을 문제 삼은 책이 다시 개념으로 답한다는 점은 독자가 따져볼 만하다.

공시 실무를 맡은 담당자, 지속가능성 관련 투자 판단을 다루는 쪽, 산업 전환을 정책으로 옮기는 이들에게 쓸모가 있다. 다만 ESG 입문서로 접근하면 얻는 것이 적다. 기본기를 갖춘 독자가 그 기본기를 의심하려고 펼칠 때 값이 나온다. 만든 사람이 직접 쓴 반성문은 그 자체로 다음 제도 설계의 재료가 된다.

페이지 기자 · Breath.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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