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환은 왜 늘 늦게 도착하는가.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누구도 그것이 문인 줄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갈림길이었음을 안다. 문소영의 『조선의 못난 개항』(역사의아침, 2013)은 그 늦음의 내부를 들여다본 책이다. 광복절이 있는 달에 이 책을 다시 펴는 이유는 기념보다 점검에 가깝다.
제목의 '못난'은 조롱보다 통증에 가깝다. 개항을 승패의 결과표로 정리하는 대신, 그 안에서 무엇을 지키려 했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되짚는다. 열세 해 전 책인데도 낡았다는 느낌이 덜한 것은 문제 설정이 사건보다 태도를 향하기 때문이다.
2013년에 나온 책을 2026년에 읽으면 묘한 시차가 생긴다. 그때의 독자는 백여 년 전의 이야기로 읽었을 것이고, 지금의 독자는 자기 시대의 이야기로 읽게 된다. 그사이 우리는 또 한 번의 전환기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지금의 전환은 석탄과 석유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 가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항만과 공단과 발전소를 낀 도시들이 통째로 흔들린다. 개항기의 포구가 그랬듯 오늘의 산업 도시도 외부에서 밀려온 시간표에 맞춰 몸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때는 조약이 시간표를 정했고 지금은 시장과 규제가 정한다. 닮은 점은 시간표를 만든 쪽과 그것을 감당하는 쪽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문화유산 쪽에서 보면 이 겹침은 더 선명하다. 개항기의 창고와 세관, 철길과 사택은 지금 대부분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 있다. 벽돌은 검게 삭았고 목재 문틀에서는 눅눅한 나무 냄새가 나며, 철제 계단은 밟을 때마다 낮고 둔한 소리를 낸다. 굴욕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기술과 노동의 축적물이라는 두 얼굴이다.

보존과 활용의 긴장은 여기서 시작된다. 남겨 두면 관리비가 들고, 손대면 원형이 사라지며, 카페와 전시장으로 바꾸면 사람이 오는 대신 이야기가 얇아진다. 이 책은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판단을 미룬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개항기의 경험으로 보여 준다.
책의 힘은 전환기를 도덕극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가 매국했고 누가 애국했는지를 가르는 대신, 정보가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한 조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따라간다. 얇아지는 곳도 분명하다. 대중적 가독성을 택한 만큼 사료를 파고드는 밀도는 전문 연구서에 미치지 못하고, 열세 해가 지난 지금의 연구 지형과는 간격이 생겼다.
그러니 개항기 입문의 정본보다는 사고의 도구로 쓰는 편이 낫다. 근대 유산을 안은 도시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 전환의 비용을 어느 쪽이 치르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특히 유효하다. 읽고 나서는 인천이나 군산의 옛 항만 구역을 한 바퀴 걸어 보기를 권한다. 벽돌 벽에 손을 대고 그 시대의 온도를 재 보는 일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이다.
한 줄 평: 실패를 해부해 다음 갈림길의 지도를 그리게 하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