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소년이 마을 폐기물 처리장을 뒤진다. 보물을 찾는 게 아니다. 손볼 여지가 남은 전자 부품을 골라낸다. 라디오를 고쳐 이웃에게 돌려주던 그 손이 마을의 물 펌프를 돌릴 발전기를 만든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원제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은 2019년 영국 전기 영화다. 말라위의 발명가 윌리엄 캄쾀바의 실화와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고, 배우 치웨텔 에지오포가 연출하며 주인공의 아버지 트라이웰 역으로 출연했다.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넷플릭스로 공개됐다.
이야기는 말라위 카숭구에서 태어나 윔베 마을에 사는 농부 집안의 소년 윌리엄에서 시작한다. 학비를 낼 수 없어 학교 출입이 금지되지만, 그는 과학 교사 카치군다와 누이의 관계를 지렛대 삼아 수업과 도서관 이용권을 얻어낸다. 도서관에서 배운 것이 전기공학과 에너지 생산이다. 2000년대 중반의 가뭄이 작물을 쓸어가고 마을이 기근에 빠지면서, 그 지식은 취미에서 생존 수단으로 바뀐다.
오늘날 기후기술은 대개 대규모 자본과 정책 보조금의 언어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 주는 출발점은 정반대다. 물 펌프가 멈췄고 그것을 돌릴 전기가 필요했다는 단 하나의 조건에서 기술이 시작된다.
윌리엄이 만든 것은 풍력 발전기다. 바람이 날개를 돌리고, 그 회전이 전류가 되고, 그 전류가 펌프를 움직인다. 원리는 해상 풍력단지와 같고 다른 것은 규모와 재료뿐이다. 이 대비는 적정기술, 그러니까 그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재료와 기술 수준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이 왜 여전히 유효한지를 설명한다.
연출은 소년의 발명을 기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에지오포는 카메라를 가뭄과 배급 폭동, 곡물 저장고를 털린 밤에 더 오래 둔다. 발명 장면보다 발명이 필요해진 과정에 시간을 쓰는 선택이고, 덕분에 풍차는 영감 없이도 따져서 도달한 결론이 된다.
아버지가 프로토타입을 부수는 장면이 잔인하게 읽히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마을의 유일한 자전거는 가족의 마지막 자산이고, 그것을 해체하자는 제안은 실패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 던지는 도박이다.
아쉬운 지점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장면과 실제로 작동하는 장치 사이의 간극, 즉 설계와 시행착오의 구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기술의 작동 원리를 궁금해하는 관객에게는 이 압축이 아쉽다. 가족 드라마의 밀도를 택한 대가로 엔지니어링의 질감이 얇아진 이야기다.
이 영화는 무대로도 옮겨졌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만든 동명 뮤지컬이 지난 2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초연했고, 4월 25일부터 7월 18일까지 런던 웨스트엔드 앳소호플레이스에서 12주간 공연된다.
설계와 시행착오를 건너뛴 편집은 끝까지 걸린다. 풍차가 돌아가는 장면의 감동이 커질수록, 그 사이에 있었을 수많은 실패의 밤이 화면 밖으로 밀려난 것도 분명해진다. 가족의 얼굴을 택한 카메라가 기계의 내부까지 담아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오래 결론은 전기가 생활의 편의였던 적 없는 시간의 감촉이다. 자전거를 해체하자는 말이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밭 한 뙈기와 한 계절을 얼마나 따져야 했는지가 스위치를 켤 때마다 되살아난다. 발명은 영감에서 오지 않고 마감이 정해진 문제에서 온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히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