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땅의 표면이 깨지고 삽이 흙을 물고 들어간다. 「파묘」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귀신의 얼굴이 아니라 오래 눌려 있던 땅이다. 그 땅을 다시 여는 순간 무엇이 풀려나는지, 영화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장재현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2024년작이다. 최민식이 땅을 찾는 풍수사 김상덕을, 김고은이 원혼을 달래는 무당 이화림을, 유해진이 예를 갖추는 장의사 고영근을, 이도현이 경문을 외는 법사 윤봉길을 연기한다. 이야기는 미국에 사는 부유한 한인 가족의 갓난아이가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는 데서 시작한다. 화림은 그것을 조상의 원혼이 부르는 '무덤의 부름'으로 읽고, 상덕과 영근을 불러 묘를 옮기러 나선다.
네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한국의 한 시골 마을, 그것도 사람을 묻을 자리로는 수상한 곳에 놓인 무덤이다. 개봉은 2024년 2월 22일, 그에 앞서 2월 16일 제7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먼저 공개됐다. 전 세계에서 9390만 달러를 벌어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에 올랐고, 통산 서른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개봉 두 해째 설을 앞둔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통계보다 직업의 목록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건넨 목록은 풍수사와 장의사, 무당과 법사다. 네 이름은 민속 사전의 표제어가 아닌 각자의 연장과 절차를 가진 직업으로 화면에 선다. 땅을 찾는 사람과 예를 갖추는 사람, 원혼을 달래는 사람과 경문을 외는 사람이 한 무덤 앞에서 각자의 순서를 지킨다. 죽은 사람을 어디에 어떻게 눕히는가를 두고 이토록 구체적인 노동이 오간다는 사실이 가장 큰 정보였다.
설이 다가오면 성묘와 벌초, 이장과 화장 사이의 선택이 실제로 집안의 식탁에 오른다. 묘를 지키는 일과 정리하는 일 사이에서 매년 결정이 내려지고, 그 결정마다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파묘」는 이 현실을 훈계하지 않는다. 묘 하나를 여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절차를 부르는지 보여 주는 방식으로, 장례 문화가 박물관에 들어간 유산이 아닌 지금도 돌아가는 노동임을 말한다.
연출의 힘은 전반부에 몰려 있다. 발굴을 축으로 삼아 관객을 절차 안에 세워 두는 동안, 공포는 소리와 흙과 기다림에서 나온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구덩이를 오래 비추는 카메라는 설명을 아끼고, 인물들은 각자의 직업 윤리로 말한다.
후반은 다르다. 묘 아래 묻힌 것이 한 집안의 원한을 넘어 더 큰 역사로 확장되면서, 앞에서 쌓은 직업의 구체성이 상징의 무게에 지점을 내준다. 손끝으로 흙을 읽던 사람들이 알레고리의 운반자가 되고, 네 인물의 결도 옅어진다. 다만 그 확장은 실패라기보다, 대중의 화법으로 유산을 말하려면 한 번은 필요했을 큰 그림에 가깝다.
제사와 성묘를 몸으로 익힌 사람에게, 그리고 그 절차가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함께 권한다. 올 설에 산에 오를 일이 있다면 봉분의 방향과 뒤편의 산세, 앞이 트인 쪽을 눈으로 한 번 따라가 보기 바란다. 상덕이 화면 안에서 하던 일이 대체로 그것이다. 이 영화가 남긴 것은 무서움이 아닌 흙을 다시 보는 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