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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 짓는 자와 소유하는 자

프레임·입력 2026. 01. 13. 오후 2:02:00
홀로코스트 생존 건축가와 후원 자본이 겹쳐 놓는 설계도의 소유권
「브루탈리스트」가 다루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의 소유권이다
「브루탈리스트」가 다루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의 소유권이다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배는 뉴욕항으로 들어오는데, 자유의 여신상은 뒤집혀 있다. 「브루탈리스트」의 서곡은 이 한 컷으로 영화 전체의 장부를 연다. 도착은 축복인가 부채인가. 영화는 첫 장면에서 유보한 답을 끝까지 회수하지 않는다.

브레이디 코베이가 연출하고 모나 파스트볼과 공동 각본을 쓴 2024년 시대극이다.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를 연기하고, 펄리시티 존스와 가이 피어스, 조 앨윈, 알레산드로 니볼라가 함께한다. 미국·영국·헝가리 공동 제작으로, 1950년대에 개발된 비스타비전 포맷으로 촬영됐다. 1961년 「원 아이드 잭스」 이후 이 포맷을 쓴 첫 작품이다.

라즐로는 아내 에르제벳, 조카 조피아와 강제로 분리된 채 홀로 미국에 닿는다. 바우하우스에서 훈련받은 건축가지만 필라델피아에서 그가 얻는 것은 사촌 아틸라의 가구점 일자리다. 잠자리는 쇼룸 창고의 임시 침대이고, 욕실은 건물 뒤편 서비스용을 쓴다. 아내와 조카는 살아 있으나 에르제벳의 건강 악화로 유럽에 발이 묶여 있다.

이 영화의 경제학은 계약서가 아닌 잠자리 배치에서 드러난다. 기술은 이주자의 몸에 붙어 있고, 그 기술을 시장에 연결하는 통로는 전부 남의 것이다.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며 미국 문화에 흡수된 사촌이 첫 관문이고, 부유한 후원자가 그다음 관문이다. 후원은 자본 공급인 동시에 설계 권한의 이전이다.

기술을 가진 쪽은 자본이 없고, 자본을 가진 쪽은 결과물의 이름을 요구한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1월에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짓고, 완성된 것은 누구 소유로 기록되는가.

설계는 한 사람이 하고 소유권 기록은 다른 곳에서 확정된다
설계는 한 사람이 하고 소유권 기록은 다른 곳에서 확정된다 / ⓒ 브레스저널

연출은 이 주제를 대사가 아닌 척도로 밀고 간다. 비스타비전의 넓은 화면은 건축물을 담기 위한 선택이지만, 정작 강조되는 것은 그 안에 놓인 사람의 크기다. 인터미션을 되살린 구성 역시 관객에게 시간의 부담을 나눠 지운다. 평단이 감독과 각본, 연기, 촬영, 음악을 고루 호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점도 있다. 후원자와 건축가의 관계를 지배와 종속의 축으로 계속 조이다 보니, 인물의 선택이 구조의 예시로 축소되는 구간이 생긴다. 개인의 셈법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대목에서 한 번 더 인물을 붙잡았어야 했다.

수치로 보면 저예산 작품이다. 제작비는 960만 달러였고 흥행 수입은 그 몇 배를 넘겼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여우주연상을 포함해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제82회 골든글로브에서는 드라마 부문 작품상 등 3개 부문을 받았다. 2024년 9월 1일 제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코베이가 은사자상을 받았고, 미국 영화연구소는 2024년 10대 영화로 꼽았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조항을 두 번 읽는 사람, 지분과 크레딧이 어디에 적히는지 신경 쓰는 사람에게 권한다. 인터미션이 필요한 길이를 감당할 각오는 필요하다. 「브루탈리스트」는 건물이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는다. 설계도가 언제 남의 것이 되었는지를 되짚게 만든다.

프레임 기자 · Breath.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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