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나가사키, 야쿠자 조직 다치바나의 신년 자리에서 소년 기쿠오가 온나가타로 「관문」의 한 대목을 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적대 조직이 들이닥치고, 소년의 아버지가 그 지점에서 죽는다. 「국보」는 예술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피가 가장 가까운 순간을 같은 방 안에 포개 놓으며 시작한다.
이상일 감독의 2025년작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2018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오쿠데라 사토코가 각본을 썼고, 요시자와 료와 요코하마 류세이가 두 젊은 배우를, 와타나베 켄이 2대 하나이 한지로를 맡았다. 5월 18일 제78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처음 공개된 뒤 6월 6일 일본에서 개봉했다.
아버지를 잃은 기쿠오는 복수를 꾀하지만 실패하고, 이듬해 가부키 명문가의 세계로 건너간다. 그 집에는 이미 아들이 있다. 핏줄로 물려받을 사람과 재능으로 넘볼 사람이 한 지붕 아래 놓이는 구조가 이 영화의 엔진이다. 계승이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배신과 같은 얼굴을 하는지, 영화는 서두르지 않고 오래 들여다본다.
무형유산을 다루는 우리 쪽 논의는 대체로 제도의 언어로 굴러간다. 지정과 인정, 전수 장학생 수, 보조금 항목. 그러나 「국보」가 보여 주는 계승은 서류가 아닌 발끝의 각도, 목을 꺾는 속도, 분을 개는 손의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에서 몸으로만 건너가는 기술은 옮겨 적을 수 없고, 한 사람이 무너지면 그만큼이 사라진다.
보존과 활용 사이의 긴장도 얼버무리지 않는다. 가부키는 박물관에 든 유물이 아닌 매일 표를 팔아야 하는 흥행 예술이고, 무대에 서는 사람이 바뀌면 관객도 바뀐다. 누구를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곧 무엇을 지킬 것인가라는 과제가 되는 위치를, 이 영화는 정확히 짚는다.
연출은 얼굴보다 손과 발, 옷의 무게를 먼저 찍는다. 분장과 헤어스타일링이 특히 상찬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장은 인물을 가리는 장치가 아닌 인물이 다른 몸으로 옮겨 가는 과정 자체로 기능한다.
촬영은 무대 조명의 인공성과 대기실의 눅눅한 어둠을 하나의 세계로 묶는다. 연기와 연출, 촬영에 호평이 두루 이어진 것은 이 세 층위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두 인물의 대비가 워낙 선명하게 설계된 탓에, 중반 이후 사건들이 그 설계도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구간이 생긴다. 야쿠자라는 출신 설정도 초반의 강렬함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상징의 비중만 남는다. 그럼에도 무대 장면이 시작되면 이 예측 가능성은 힘을 잃는다.
일본에서 1억 2800만 달러를 벌어 실사 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고, 제98회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일본 출품작으로 12월 예비 후보에 올랐으며 분장상 후보에 지명됐다. 다만 흥행 수치보다 오래 남아 있는 것은 분을 개는 손의 리듬 쪽이다.
전통을 업으로 삼은 사람, 오래된 기술이 왜 자꾸 끊기는지 궁금한 사람, 재능과 핏줄 사이에서 한 번쯤 저울질당해 본 사람에게 권한다. 극장을 나선 뒤에는 가까운 전수교육관이나 국악·탈춤 공개 무대의 연말 일정을 한 번 찾아보시라. 화면에서 본 그 손의 습관은 같은 도시의 어느 연습실에서도 매일 반복되고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목록이 아닌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