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한국이 싫어서」, 떠남을 계산으로 읽는다

김범수·입력 2025. 09. 16. 오전 9:00:00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 남긴 임금·주거·노동시간에 대한 물음
영화 「한국이 싫어서」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의 시간이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의 시간이다 / rawpixel · CC0

계나는 떠나기로 한다. 이유를 두 마디로 줄이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다. 영화는 이 축약된 대답을 제목에 그대로 올려놓고, 그 짧은 문장이 실제로는 무엇의 합계인지 되짚는다.

「한국이 싫어서」(Because I Hate Korea)는 장건재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드라마다. 장강명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2023년 10월 4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됐다. 국내 극장 개봉은 그로부터 약 10개월 뒤인 2024년 8월 28일이다. 고아성이 계나를, 주종혁이 재인을, 김우겸이 지명을 맡았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20대 후반의 계나가 어느 날 직장과 가족, 연인을 두고 홀로 뉴질랜드로 향한다. 촬영은 2022년 7월 29일 시작됐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지연을 거쳐 2023년 1월 뉴질랜드 현지 촬영이 이뤄졌다. 러닝타임의 무게중심은 이주를 결심하는 순간이 아닌 그 뒤에 이어지는 시간에 실린다.

이 영화가 경제 지면에 걸리는 이유는 계나의 선택이 취향의 문제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출퇴근에 쓰이는 시간, 그 시간이 만들어 내는 주거지의 위치, 그 위치가 임금에서 떼어 가는 몫. 떠남의 이유를 감정어 하나로 요약할 때 사라지는 것이 이 계산이다.

제목의 '한국이 싫어서'는 2010년대 자조성 밈이었던 '탈조선'에서 왔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떠나도 낙원은 없다는 뜻이다. 영화가 이 이중성을 유지하는 한, 이주는 해법이 아닌 조건을 바꾸는 거래에 가깝게 읽힌다.

연출은 사건을 크게 키우지 않는 쪽을 택했다. 고아성이 맡은 계나는 결심을 웅변하지 않고, 카메라도 그 결심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 절제가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자 동시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점이다.

미덕인 이유는 무엇을 옳다고 볼지 관객에게 넘기기 때문이다. 헐거워지는 이유는 임금과 주거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시간표 안에만 담아 두기 때문이다. 임금과 주거가 왜 그렇게 배치돼 있는지는 화면 밖에 남고, 관객은 계나 한 사람의 선택만 따라간다. 개인의 결단으로 환원되는 순간 체계를 향해 던질 말은 한 뼘 물러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지금 다시 볼 값이 있다. 부산에서 영화제의 계절이 돌아오는 9월, 2년 전 개막작이 던진 물음표가 그 사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각자의 근로시간표와 월세 명세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직과 이주를 계산 중인 관객이라면 계나의 결심보다 그 이후의 생활비 항목을 보게 된다.

떠남을 결심으로 읽으면 이 영화는 짧고, 계산으로 읽으면 길다. 제목은 감정을 말하지만 내용은 조건을 말한다. 「한국이 싫어서」는 그 간극을 메우지 않고 남겨 둔 채 끝난다. 극장을 나서면 싫음의 이유를 항목별로 적어 보게 된다.

김범수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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