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이 영남권을 '글로벌 피지컬 AI 혁신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며 약 60조원을 투입한다고 3일 밝혔다. 진주 경상국립대에서 열린 국민보고회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DX부문장)이 직접 계획을 읽었다. 돈은 구미·울산·부산·거제 네 곳으로 갈린다. 삼성은 여기서 양질의 일자리 20만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거점별 배분을 보면 이 투자의 성격이 드러난다. 구미에 19조원, 울산에 16조원, 부산에 15조원, 거제에 10조원이다. 넷을 더하면 발표 총액과 맞아떨어진다.
구미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SDS가 휴머노이드 양산 체제, 로봇 데이터 팩토리, 제조 AX 기반 'AI 드리븐 팩토리',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맡는다. 로봇을 만드는 공장과 로봇이 일하는 공장을 동시에 짓는 계획이다. 나머지 세 곳은 부품과 소재를 맡는다.
울산에서는 삼성SDI가 전고체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겠다고 했다. 전고체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꿔 발화 위험을 줄이고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전기를 담는 방식이다. 휴머노이드와 전기차에 쓰인다. ESS용 LFP·나트륨 배터리 라인도 늘린다.
부산에서는 삼성전기가 AI 서버용 패키지 기판과 고부가 MLCC 마더라인을 만든다. MLCC는 전자기기 안에서 전기를 잠깐 담았다 흘려보내며 신호를 고르게 다듬는 쌀알만 한 부품이다. 거제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최첨단 고부가가치선과 해양 인프라 건조 기지를 짓고, 디지털·AI·로봇 전환을 묶은 3X 기반 자율형 조선소를 추진한다.
노 사장은 정부를 향해 로봇산업 특화단지 지정과 인센티브, 국내 조선업 관련 정부 주도 사업 확대를 요청했다. 그가 밝힌 인식은 이랬다. AI가 전통 제조 공장을 휴머노이드 로봇 중심의 AI 드리븐 팩토리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 운영과 유지보수, 로봇에게 동작을 가르칠 데이터를 다루는 일, AI 엔지니어링은 새로 생기는 직무다. 조립과 검사처럼 반복 동작이 핵심인 직무는 로봇이 대체하는 영역이다. 직접고용과 협력사, 간접 유발 고용을 어떻게 나눠 셈했는지는 공개 전이다.

제조 현장의 AI 전환은 대기업만의 사안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29일 충북 음성 풀무원식품 공장에서 '중소제조 특화 멀티 AI 에이전트 실증 프로젝트' 착수간담회를 열고 12개 과제의 현장 실증에 들어갔다. 설비를 자동으로 돌리고 데이터를 모으는 데 그쳤던 기존 스마트공장과 달리, 여러 AI가 서로 역할을 나눠 공정을 분석하고 품질을 예측하며 작업자와 관리자의 결정을 거든다. 식품에서는 아이제라가 풀무원식품을 대상으로 품질 편차 분석과 위험 사전 예측 모델을, 뷰티에서는 카이로스랩이 처방 설계부터 규제 검토와 임상효능 예측까지 전 주기 적용을 검증한다.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꼽은 공통 애로는 품질 편차, 공정 조건 조정, 숙련인력 부족이었다. 품질 편차와 공정 조건 조정은 숙련공의 감각으로 메워온 영역이고, 그 감각을 물려받을 사람은 줄었다. 6개월간의 실증은 AI 에이전트가 이 빈틈을 실제 데이터로 채울 수 있는지를 본다.
같은 흐름이 국경 밖에서는 더 큰 규모로 진행 중이다. 국제로봇연맹이 4월 8일 낸 보고서를 보면 2024년 중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66대로 한 해 사이 17% 올랐고, 돌아가는 산업용 로봇은 약 200만 대로 2위 일본의 4.5배다. 지난해 중국이 설치한 산업용 로봇은 나머지 전 세계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부분도 중국에서 나온다.
배경에는 인구가 있다. 유엔 통계는 중국의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약 10억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100년 3억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본다. 60세 이상 비중은 현재 23%에서 2100년 절반을 넘어선다.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미래를 로봇으로 메우겠다는 선택이다.
그런데 같은 나라에서 16~24세 5월 실업률은 15.6%로 1년 전보다 0.7%포인트 올랐다. 차량 호출과 음식 배달 같은 플랫폼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인구는 2억 명을 넘는다. 화주그룹은 자동화로 객실당 직원 비율을 0.1명까지 낮췄다고 했는데, 업계 평균은 0.3~0.8명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점이 빠르면 그 간극은 사람이 감당한다.
중국 샤니 트럭 공장은 패널 압착과 도장을 로봇에 맡겼고,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드는 최종 조립까지 자동화와 휴머노이드 도입을 밀고 있다. UB테크는 지난달 30일 선전에서 가사 지원과 정서 교감을 겨냥한 2족 보행 로봇 U1 시리즈를 내놨다. 공장에서 쌓인 노동 과정 데이터가 두꺼워질수록 몸을 가진 AI의 동작이 정교해진다. 구미 계획에도 로봇 데이터 팩토리가 들어갔다.
삼성이 내놓은 계획대로면 구미 라인의 직무는 부품 조립에서 로봇 운영과 오류 확인으로 옮겨간다. 그 일을 할 사람이 지금 라인에 선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학력과 경력을 가진 새 인력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삼성이 정부에 요청한 특화단지와 인센티브를 논의할 때 재교육과 전환배치가 함께 다뤄질지가 20만개 일자리 약속의 실질을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