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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규제, 대서양 건너 갈라지다

곽동현·입력 2026. 05. 31. 오전 7:33:00
미국은 폐지 절차, 한국·EU는 법제화 강화로 이동
공시 규제가 갈라지자 부담은 공급망 중간으로 몰린다
공시 규제가 갈라지자 부담은 공급망 중간으로 몰린다 / ⓒ 브레스저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 기후 공시 의무화 규정의 전면 폐지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지속가능성 공시를 자본시장법 위에 올려 법제화하자는 제언이 공개 세미나에서 나왔고, 수출 중견기업들은 유럽연합(EU) 규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호소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공시 규제가 국가별로 서로 다른 쪽으로 움직이면서, 기업이 지는 부담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속가능성 공시를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2026년 2월 금융위원회를 통해 제시된 ESG 공시 로드맵은 2028년(2027 회계연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029년부터 자산 30조원 미만 상장사에 공시 의무를 적용하고, 2031년부터 스코프3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 로드맵은 빠르면 2026년 6월 공개될 예정으로, 발표는 다음 달로 예고돼 있다.

KSSB는 국내 기업이 ESG 관련 위험·기회 요인을 투자자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표준화한 보고 규범이다. 지금은 기준과 공시 근거가 없어 기업 자율판단에 맡겨져 있고, 허위 공시에 제재를 가할 수단도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 공개된 정보는 투자자가 비교할 근거를 갖기 어렵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2026년 5월 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한국회계기준원이 연 국제 세미나에서, 지속가능성 공시 법제화의 토대로 자본시장법을 활용해 국제 정합성과 기업 수용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별도의 기준 제정 기관과 해석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 세미나에서 제시됐다. EU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시행 중이고, ISSB 기준은 주요국 공시 제도의 기반으로 굳어지는 흐름이다.

부담을 실제로 체감하는 쪽은 공급망 중간 단계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5월 28일 서울 용산 나인트리프리미어로카우스호텔에서 산업통상부와 함께 '중견기업 ESG 대응 간담회'를 열었다. 서연이화, 동아엘텍, 다인정공 등 자동차·전자·기계 부품을 공급하는 중견기업이 참석해 공급망 ESG 리스크를 점검했다.

참석 기업들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 CSRD 등 EU 규제와 국내 ESG 의무 공시 제도화가 겹치면서 데이터·인력·운영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표준 보고서 양식과 실사 체크리스트 같은 실무 도구다. 중견련 정책본부장은 일본과 호주도 ESG 공시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다.

정부 대응은 업종별 지원 쪽에 놓여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2026~2030)에 따라 매년 조선·방산 등 주력 업종을 선정해 ESG 정보 제공과 수준 진단, 컨설팅을 묶어 제공하고 있다. 2026년에는 중소·중견기업 500개사에 공급망 ESG 실사 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이다. 공공 부문에서는 통합공시(ALIO)의 ESG 관련 항목이 41개로 늘었다.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외부 인증(제3자 보증)을 점차 의무화하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라는 진단도 함께 제시됐다. 미국 규정 폐지 절차의 단계와 적용 범위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 결과가 한국 수출기업에 어떻게 되돌아올지는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EU 규제와 국내 의무화 일정이 동시에 걸리는 구간에서는 데이터 수집 체계를 갖추지 못한 기업일수록 대응 여력이 좁아진다.

국내 일정만 놓고 보면 다음 분기점은 KSSB 로드맵이다. 6월 공개가 예고된 이 문서가 2월 로드맵의 단계별 시점을 그대로 유지하는지, 스코프3 적용 범위를 어떻게 그리는지에 따라 부품 공급 기업의 준비 기간이 정해진다. 간담회 테이블에 앉은 기업들은 유예 대신 작성 양식을 요구했다.

곽동현 기자 · Breath.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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