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전환금융 가이드라인, 검증 없이 '전환의지'만으로 통과

플래닛·입력 2026. 04. 14. 오전 9:54:00
진입·검증·공시·제재 4단계 모두 완화, 국제 기준과 격차
진입·검증·공시·제재 네 단계가 모두 열려 있는 전환금융 체계
진입·검증·공시·제재 네 단계가 모두 열려 있는 전환금융 체계 / ⓒ 브레스저널

정부가 2026년 2월 발표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이 국제 기준에 견줘 실효성 검증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녹색전환연구소는 4월 13일 이슈브리프 '한국 전환금융, 녹색으로 향하는가'를 내고, 진입·검증·공시·제재 4단계 전부에 완화된 기준이 겹쳐 부실 전환계획이 어느 단계에서도 걸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환금융은 석유화학·철강·발전처럼 배출량이 많은 산업의 저탄소 전환 자금을 대는 금융을 가리킨다. 지적은 4월 20일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K-GX 주간을 앞두고 제기됐다.

한국 가이드라인은 EU형 활동 기준 접근과 일본형 기업 경로 기반 접근을 합친 '혼합모델'을 표방한다. K-택소노미에 기대 적격 활동을 규정하는 방식과, 기업이 세운 전환전략을 심사해 인정 여부를 가리는 방식을 함께 쓰겠다는 설계다. 이슈브리프는 두 접근 어느 쪽에서도 핵심 원칙이 충실히 구현되지 않았고, 실질성을 담보할 공통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봤다.

비교 대상국의 문턱은 더 높게 설정돼 있다. EU는 사전에 정해둔 정량 기준과 중대한 피해 금지(DNSH) 원칙으로 전환 적격성을 규정한다. 일본은 국제자본시장협회(ICMA)가 제시한 4대 요소를 모두 충족하도록 원칙을 세웠고, 영국은 15개 핵심 기준으로 기업 전환전략을 평가·검증한다. 아세안은 감축목표 수준에 따라 3단계로 나눈 체계를 운용해 유연성과 신뢰성을 함께 잡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전환의지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수혜 자격 요건이 채워진다. 외부 경로 채택 확인서를 내거나 자체 전환계획을 세우거나, 둘 중 하나만 충족해도 적격이 인정된다. 세부 실행계획이 빠져 있어도 전환의지 3등급으로 분류된다.

검증 단계도 헐겁게 짜여 있다. 외부 제3자 검증은 의무가 아닌 임의 사항이어서, 기업이 자체 서약서만 제출해도 전환금융 취급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공시는 금융회사에 대한 보고로 한정되고 시장 공개 의무가 없어, 어느 기업이 얼마를 어떤 근거로 받았는지, 이후 감축경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외부에서 들여다볼 통로가 없다. 미이행 시 제재는 전환금융을 일반금융으로 돌리거나 우대 혜택을 줄이는 선에 그치고, 이마저 금융회사 재량이며 추가 금전적·법적 책임은 따르지 않는다.

연구소는 이를 두고 어느 국가도 선택하지 않은 방식이자 유연성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설계라고 평가했다. 이슈브리프가 짚은 위험은 '탄소고착'이다. LNG 발전소처럼 한 번 지으면 30년 넘게 돌아가는 설비에 전환금융 이름표가 붙으면, 감축 대신 배출 시설의 수명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쪽 신호도 검증 여부에 반응해왔다. 일본 GX 경제이행 계획은 가스와 암모니아를 포함하지만, 기후채권이니셔티브(CBI) 인증을 받은 첫 GX 국채는 가스·암모니아 발전을 제외하고 초과 청약과 그리니엄을 확보했다. 인증 없이 발행된 후속 채권은 국제 투자자를 끌어들이지 못했다. 글로벌 녹색채권 잔액은 지난 10년 사이 1000억달러에서 7조달러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연구소가 내놓은 보완책은 두 갈래다. 업종별 감축 로드맵 수립 권한을 기후에너지환경부나 녹색전환 컨트롤타워 중심으로 재편할 것, 그리고 전환전략 기준을 'NDC 우선'에서 떼어내 파리협정 목표 부합 원칙에 근거해 설계할 것을 요구했다.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연구원은 전환금융이 형식적 이름표로 소비될 위험을 지적하며 정부의 제도 보완 책임을 언급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이 지적에 어떻게 답할지는 정리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 시행 이후 실제 취급 건수와 금액도 외부에 드러난 것이 없다. 6일 뒤 여수에서 열리는 K-GX 주간이 그 답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이른 무대다.

플래닛 기자 · Breath.Econ

관련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