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9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19.50달러를 찍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선을 넘긴 뒤 다시 최고치를 갈아치운 수치로 파악된다. 화석연료 가격이 이렇게 흔들릴 때마다 재생에너지의 명분은 커진다. 그런데 명분이 커지는 것과 전환이 빨라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산업연구원이 12일 내놓은 보고서는 이 간극을 정면으로 다뤘다. 산업탄소중립연구실 박유미 연구원은 중동 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뚜렷하게 부각시켰지만, 단기 충격이 그대로 전환 가속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위기가 열어준 창과 그 창을 실제로 통과하는 일 사이에 놓인 조건들을 짚은 이야기다.
2월 28일 시작된 중동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졌고 석유·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가스 가격은 유럽에서 40% 이상, 아시아에서는 두 배 넘게 뛰었다. 세계 최대 LNG 시설인 라스라판의 가동도 멈춰섰다. 한국은행은 이 여파로 성장 하방 압력이 커져 올해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봤고, 종전 뒤에도 시설 재가동과 공급 정상화의 불확실성 탓에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첫 번째 조건은 돈값이다. 화석연료 가격 상승은 물가를 밀어올리고 물가는 금리를 끌어올린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초기 설비 투자 비중이 커서 자본 조달 비용에 유난히 민감하다.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약 20% 상승하는 반면 가스 발전은 11%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위기가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키우면서 동시에 그 투자를 위축시키는 상충이 여기서 생긴다.
두 번째 조건은 전기가 흐르는 길이다. 설비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력망 확충과 저장·백업 같은 시스템 통합비용, 인허가를 포함한 제도 정비가 나란히 진행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력망 증설을 기다리기보다 짓기 빠른 가스 발전을 고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는 재료다. 구리는 2035년까지 수요 대비 공급이 30% 모자랄 것으로 전망되고, 새 광산과 정제시설을 갖추는 데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보고서가 짚은 더 근본적인 지점은 지금까지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존 에너지를 밀어낸 '대체'에 이르지 못하고 늘어나는 수요를 받쳐준 '추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총수요를 줄이고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는 일이 전제돼야 실질적인 전환이 성립한다. 실제로 중동 사태 이후 석탄 국제 선물 가격은 아시아에서 13.2%, 유럽에서 14.2% 올랐고 한국은 석탄 화력 발전량 상한을 풀었다.
대응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차액결제계약(CfD)과 장기 고정가격 계약, 정책금융을 통한 위험 완화로 투자 여건을 안정시키고, 핵심광물 조달·비축을 위한 자원외교와 공급망 다각화를 병행하자고 제안했다. 전력망 인프라 구축, 건물·산업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 대중교통 투자 확대, 전기차 보급 확대도 구체적 방안으로 담겼다. 전환기에도 화석에너지 공급 안정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함께 달았다.
정부는 6일 재생에너지 확대와 녹색 제조 육성, 에너지 전환의 지역균형발전을 축으로 하는 에너지 대전환 대책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가 포함됐다. 2024년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0.6%로 OECD 평균 30%대와 거리가 있다. 기후부 추가경정예산 6162억 원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집중됐는데, 세부 편성 내역은 공개된 바 없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태양광과 바람은 봉쇄되거나 무기화될 수 없다며 전환 가속을 촉구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뒤 에너지 절감과 수입원 다변화, 청정에너지 개발을 묶은 REPowerEU 계획을 내놨고,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도 에너지 주권을 이유로 재생에너지 투자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위기가 방아쇠를 당긴 뒤 무엇을 준비해뒀느냐가 결과를 가른다.
국내에서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열려 있다. 정부는 대중교통 이용 환급률을 9월까지 30%로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승용차 한 대를 두고 지하철과 버스로 옮기는 선택은 개인의 교통비를 줄이는 동시에, 보고서가 말한 '총수요 절감'의 가장 작은 단위이기도 하다. 유가 그래프가 다시 내려간 뒤에도 남아 있을 습관은 그런 쪽에서 만들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