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배럴당 106달러가 밀어올린 재생에너지 시계

플래닛·입력 2026. 04. 05. 오후 4:33:00
호르무즈 봉쇄에 흔들린 수입 의존, 전환은 비용이 아닌 안보다
유가 급등이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의 값어치를 다시 계산하게 만들고 있다
유가 급등이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의 값어치를 다시 계산하게 만들고 있다 / ⓒ 브레스저널

서부텍사스유는 2026년 2월 말까지만 해도 배럴당 67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3월 31일 장중 가격은 106달러를 넘어섰다. 한 달 남짓한 사이에 배럴당 40달러 가까이가 얹힌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전 세계 원유의 27%, 하루 약 2000만 배럴이 지나던 통로가 좁아진 결과다.

충격은 곧바로 국내 산업 현장으로 내려왔다. 한 증권사 분석은 정유·석유화학 업체의 원재료 재고가 빠르면 4월 중순 소진될 것으로 봤다. 정부는 비축유를 풀고 있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배로 실어오는 나라에서 항로 하나가 막히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금이 그 실물 실험장이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태양광과 풍력은 주로 기후 대응 비용의 항목으로 다뤄졌다. 유가가 요동치는 국면에서는 국내에서 만들어 국내에서 쓰는 전기가 곧 공급 안정성이 된다. 연료를 수입하지 않는 발전원은 지정학 리스크에 값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제주도 타운홀미팅에서 화석에너지 의존의 위험을 짚으며 신속한 전환을 강조했다. 정책 라인의 설명도 같은 결이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제2차관은 4월 2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제14차 한국경제인협회 K-ESG 얼라이언스 회의 강연에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의 동시 달성을 앞세우고, 탈탄소 에너지 믹스와 차세대 전력망, 공정 전기화, 저탄소 연료 전환을 수단으로 꼽았다. 녹색금융 지원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돈의 흐름도 움직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으로 5245억 원을 편성했다. 재생에너지 금융지원에 2205억 원을 더해 햇빛소득마을과 태양광·풍력 발전설비 설치 자금을 장기·저리로 대주고, 보급지원 624억 원으로 주택 베란다와 건물·학교·전통시장까지 태양광을 넓힌다.

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 588억 원, 전기화물차 구매지원 900억 원, 주택 난방 전기화 56억 원, 사회복지시설 전기화 13억 원도 담겼다.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 안이라 최종 규모는 확정 전이다.

수입 항로의 취약성과 국내 발전원의 안정성이 갈리는 지점
수입 항로의 취약성과 국내 발전원의 안정성이 갈리는 지점 / ⓒ 브레스저널

확대의 형태도 구체적이다. 정부는 햇빛소득마을을 150개에서 700개로 늘리고, 직접대출과 이차보전을 함께 써 약 4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추가한다. 전북 정읍시는 4월 2일 햇빛소득마을 추진단 발대식과 주민설명회를 열었고, 사전 수요조사에서 관내 17개 마을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마을 단위로 발전 수익을 나누는 방식은 부지 갈등을 줄이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전력망은 별개의 과제다.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는 34GW 수준이고, 정부는 2030년까지 이를 크게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내건 2030년 100GW 수용 목표에는 지산지소형 분산 전력망 구축과 지역 간 융통선로 보완이 따라붙는다. 발전소를 세우는 일과 그 전기를 받아낼 그물을 짜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기업 쪽 온도는 절반으로 갈린다.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을 상대로 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403개사 가운데 57.3%는 탄소중립을 '어렵지만 가야 할 길'로, 42.7%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경쟁력 측면에서는 위기라는 응답이 74.2%로 기회(25.8%)를 크게 앞섰다. 그러면서도 64.8%는 대응 중이거나 대응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기업이 원하는 것도 분명하다. 시급한 정책과제로 감축 투자 지원 36.7%, 탈탄소 혁신기술 개발 31.0%, 재생·수소에너지 공급 인프라 구축 15.1%가 상위에 올랐다. 반면 RE100 같은 이니셔티브 참여는 대응 내용의 9.3%에 그쳤다.

수출 시장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투자 여력과 인프라를 함께 밀어주는 정책이 전환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태양광·풍력 제품을 밀어내는 움직임도 국내 공급망에는 변수이자 기회다.

유가는 언젠가 내려올 것이다. 그때 이 국면을 지나간 소동으로 남길지, 발전설비와 전력망을 한 단계 올려놓은 시기로 남길지는 지금 몇 달의 결정에 달렸다. 마침 베란다 태양광과 마을 단위 발전 사업의 문턱은 예년보다 낮아져 있다.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시·군 에너지 담당 부서에 베란다 태양광 보급 신청 절차를 한 번 물어보는 것으로도, 34GW라는 수치의 뒷자리는 조금 움직인다.

플래닛 기자 · Breath.Earth

관련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