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6% 대 18.8%. 1.5도 경로를 맞추려면 각국이 가져가야 할 재생에너지 전력원 비중의 평균값과, 한국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2030년에 잡아둔 목표치다. 영국 싱크탱크 인플루언스맵은 지난 8일 한국 전력계획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이 격차를 짚으며 국내 계획이 기후과학이 제시한 경로와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같은 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추가경정예산 6162억원을 확정했고 그중 2323억원을 재생에너지 확대에 배정했다.
정부의 의지가 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재생에너지 중심 대전환'을 제안했고, 같은 날 '국민주권정부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이 나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발전 비중 20% 달성이 뼈대다. 3월 26일에는 해상풍력법도 시행에 들어갔다.
문제는 계획과 계획 사이에 놓인 틈이다. 11차 전기본은 2025년 2월 21일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한 2024~2038년 계획으로, 2030년 원자력 31.8%, 석탄 17.1%를 담고 있다. 인플루언스맵은 이 두 수치를 IPCC가 제안한 과학기반정책 권장 목표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봤다. 새 추진계획의 20%와 전기본의 18.8%가 같은 계획의 갱신인지 별개 문서의 병존인지는 어느 쪽에서도 설명되지 않았다.
인플루언스맵은 목표가 낮게 잡힌 배경으로 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전력공사 등 화석연료 관련 기업의 영향을 지목했다. 이들 기업과 산업부의 반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보고서는 RE100과 넷제로를 공개 선언한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고 경제단체를 통한 간접 관여에 머물렀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목표를 끌어올릴 힘이 있는 쪽이 침묵했다는 뜻이다.
제도 설계는 그사이 꽤 바뀌고 있다. 추진계획은 RPS를 장기계약 기반 입찰시장으로 전환하고, 지역별 요금제와 시간대별 요금제를 도입하는 개편안을 담았다. 석탄 등 일부 전원은 용량요금 형태로 남기고, 석탄은 2040년까지 폐지하되 일부를 예비전원으로 두는 방식이다. LNG는 변동성 대응용으로 점진 축소하고 원전은 기저 보완 전원으로 쓴다.
바깥 여건은 순탄하지 않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10일 낸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제약 요인을 짚었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카타르 라스라판 LNG 시설이 멈추면서 카타르는 가스 계약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가스 가격은 유럽에서 40% 이상, 아시아에서는 두 배 넘게 올랐다.
화석연료 값이 뛰면 재생에너지가 유리해질 듯하지만 계산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보고서가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금리가 2%포인트 오를 때 발전비용은 재생에너지가 20%, 가스가 11% 상승한다. 초기 투자 비중이 큰 재생에너지가 금리에 더 민감한 탓이다. 디젤 값이 오르며 설비 건설 현장의 중장비 운영비는 전쟁 이전보다 35% 늘었고, 이번 달 발전용 석탄 선물은 아시아에서 13.2%, 유럽에서 14.2% 올랐는데도 한국은 석탄화력 발전량 상한 해제를 결정했다.
전력 수요 쪽 압력도 커진다. 세계자원연구소는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4년 약 180TWh에서 2030년 400TWh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수요가 불어나는 동안 공급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다음 계획의 핵심이 된다. 화석연료 수입 의존이 곧 위험이라는 사실을 중동 정세가 다시 확인시킨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 대응인 동시에 에너지 안보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수용성 해법도 준비돼 있다. 추진계획은 주민이 발전과 계통에 직접 투자해 수익을 나누는 햇빛소득·바람소득·계통소득 모델과 '계통소득마을'을 제시했다. 참고 견뎌야 할 시설이던 발전소를 배당이 나오는 자산으로 바꾸자는 발상이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올해 하반기 발표된다. 100GW와 18.8% 사이의 간격이 여기서 좁혀질지, 그대로 남을지가 곧 드러난다. 자기 지역에 계통 투자나 태양광 사업 공고가 붙어 있는지 지방자치단체 게시판을 한 번 열어보는 것으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주민이 지분을 가진 발전소가 늘어날수록, 목표치는 문서 밖으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