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총고용은 그대로, 문은 좁아졌다

미디어·입력 2026. 04. 07. 오후 5:17:00
대체율 10% 논쟁 뒤에 가려진 청년 진입 경로의 축소
전체 고용은 유지되지만 신규 진입 통로는 좁아지고 있다
전체 고용은 유지되지만 신규 진입 통로는 좁아지고 있다 / ⓒ 브레스저널

고용노동부가 4월 6일부터 이틀간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APEC 미래 일자리 포럼'을 열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개최된 APEC 노동장관회의 공동성명의 후속 조치로, 국제기구와 회원경제체 정책담당자, 민간기업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틀간 오간 논의는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없애느냐에 머물지 않았다. 충격이 어느 집단에 가장 이르게 닿느냐가 초점이었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세리 연구자는 국내 기업 대다수가 AI의 업무 대체 비율을 최대 10%로 답했다고 발표했다. OECD 기준으로도 AI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광범위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체율 10%는 절반이 사라진다는 공포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같은 발표의 뒷부분이 이 안도감을 흔든다.

2023년 생성형 AI가 퍼진 뒤,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청년 고용 증가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 AI 노출도란 해당 직무의 업무 가운데 현재 AI가 수행할 수 있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키는 지표다. 22~25세의 이런 직종 진입률도 줄고 있다. 전체 고용 규모는 흔들리지 않는데 새로 들어가는 문만 좁아지는 현상, 포럼에서는 이를 '총량의 함정'이라 불렀다.

기업의 감원이 AI의 실증된 성과 대신 기대치를 근거로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실제 도입 효과가 검증되기 전에 인력 계획부터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 경우 줄어드는 쪽은 대체로 경력이 짧고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인력이다. 총량 통계가 평온해 보이는 동안 특정 연령대와 숙련 구간에 부담이 몰린다.

OECD의 안젤리카 살비 델 페로는 첫날 기조연설에서 전체 직종의 27%가 자동화로 인한 축소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54%가 향후 10년간 AI로 인한 실업을 우려한다는 결과도 함께 제시됐다. 반면 AI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고 유지하는 고급 기술 일자리는 전체의 1%에 그친다. 두려움의 크기와 새로 열리는 통로의 폭이 어긋나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조사에서도 비슷한 온도차가 확인된다. 직장갑질119 설문에서 20대 직장인 10명 중 6명이 AI가 자신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고 답했고,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임금이 낮을수록 그 시점을 더 가깝게 봤다. 한국고용정보원 '디지털 전환과 노동시장' 보고서는 AI가 직무를 단순히 줄이기보다 재구성한다고 분석한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자동화되는 업무와 중요도가 올라가는 업무가 갈린다는 것이다.

포럼에서 소개된 기업 사례는 그 재구성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효성ITX는 콜센터 상담사에게 AI 소프트웨어 교육을 실시해 챗봇 설계와 품질 관리 업무로 옮겼다. 포스코는 딥러닝 기반 원격 운영 시스템으로 고위험 용광로 점검을 대체해 산업재해 위험을 낮췄고, 홍콩 직업안전건강위원회는 스마트헬멧 센서와 AI 알고리즘을 묶은 안전 시스템을 발표했다. 이런 전환이 몇 명에게 적용됐고 재해가 얼마나 줄었는지는 발표에 담기지 않았다.

전환의 걸림돌은 의지보다 역량 쪽에 있다. OECD 설문에 응한 중소기업의 절반은 AI 도입의 가장 큰 장애물로 기술력을 꼽았다. 전문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공고가 전년보다 11% 늘었다는 발표도 나왔지만, 그 공고에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 재설계 역량을 갖춘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 사이의 격차가 개인의 충격 강도를 결정한다.

노 연구자는 평생학습 시스템 구축, 기술 도입 과정에서의 사회적 대화와 근로자 참여 확대, 책임 있는 AI 거버넌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국정과제 '노동대전환'과 연계한 산업전환 고용안정 관련 기본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며, 명칭과 발표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다. 포럼 토론에서는 싱가포르와 필리핀 사례를 놓고 정부의 역할이 논의됐다.

AI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비우지는 않는다. 대신 첫 직장에 들어가는 문턱을 조금씩 올리고, 같은 일자리 안에서 무엇이 중요한 업무인지를 조용히 바꾼다. 지금 콜센터 상담사가 챗봇 설계자로 옮겨 앉는 과정이 몇 년 뒤 사회 초년생의 이력서를 결정한다. 통계가 평온할수록 그 안에서 무엇이 옮겨가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커진다.

미디어 기자 · Breath.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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