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 한 겹에 물방울이 빼곡하다. 그 너머로 주황과 청록, 붉게 바랜 벽 같은 색들이 번져 서로 경계를 잃었다. 굵은 물줄기가 세로로 흘러내린 자국마다 색이 길게 끌려 내려간다.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 젖은 창이 가장 진해지는 시간대다.
초점을 물방울에 맞추면 바깥 색이 흐려지고, 색을 보려 하면 물방울이 사라진다. 그 사이를 몇 번 오가다 보면 눈이 슬며시 힘을 푼다. 어깨가 조금 내려가고, 들이쉬는 숨이 아랫배까지 닿는다.
오늘의 마음은 무엇 하나 또렷하게 만들어 내지 못해 조바심이 난 상태에 가깝다. 흐린 채로 두어도 괜찮은 것들이 세상에는 꽤 많다.
창가로 가서 빗소리를 일 분만 들어 보면 어떨까. 유리를 때리는 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소리, 멀리 젖은 길을 지나가는 바퀴 소리. 굳이 구분하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도 된다.
같은 일 분은 우산 아래에서도 만들어진다. 정류장 지붕에 빗줄기가 부딪히는 동안,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려던 눈을 잠깐 젖은 도로 쪽으로 풀어 두는 방법이 있다. 그때 어깨가 어디쯤 올라와 있는지 살펴보는 정도면 된다. 귀 가까이 붙어 있는지, 조금 떨어져 있는지, 한쪽만 더 높은지 확인하고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다.
물방울 하나가 충분히 무거워지면, 저 혼자 길을 내며 아래로 미끄러진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