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눈 위에 남은 가지의 지도

플래닛·입력 2026. 03. 25. 오전 10:35:00
잎을 다 내려놓은 나무가 겨울을 건너는 방식
비어 보이는 계절이 가장 부지런하다
비어 보이는 계절이 가장 부지런하다 / 사진 Mr Dr3igeteilt · Pexels

하늘은 회백색으로 평평하고, 눈밭도 같은 밝기로 펼쳐져 있다. 그 사이 좁은 띠에 나무 두 그루가 잎 하나 없이 서서 가지 끝까지 하늘에 새겨 놓았다. 왼쪽 화면 밖으로 전선 한 줄이 비스듬히 지나가고, 눈 위로는 마른 풀이 붉은 기운을 띤 채 삐죽삐죽 올라와 있다.

잎이 없으니 나무의 구조가 그대로 보인다. 굵은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가 몇 번이고 다시 갈라지며 끝없이 가늘어지는 형태, 그것은 빛을 한 톨이라도 더 받으려고 수십 년에 걸쳐 계산된 모양이다. 여름 내내 이 가지 끝에 매달린 잎들이 공기 중의 탄소를 붙잡아 줄기와 뿌리에 눌러 담았고, 그렇게 저장된 것이 지금 눈 위에 검은 선으로 서 있다.

발밑도 비어 있지 않다. 눈은 이불처럼 땅의 온기를 붙들어 주고, 흙 속에서는 뿌리와 미생물이 낙엽을 천천히 분해하며 다음 계절의 양분을 만든다. 겨울 들판이 조용한 것은 아무 일도 없어서가 아니라,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쌓아 온 시간은 톱 한 번이면 끝나지만, 같은 굵기를 다시 만들려면 수십 년이 필요하다. 동네의 늙은 나무를 남겨 두는 선택, 빈 땅에 어린 나무를 심는 선택이 이 겨울 화면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

3월 말의 눈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이 가지 끝마다 좁쌀 같은 눈이 부풀어 오르고, 회백색 화면에 연둣빛이 번질 것이다. 사진을 한 번 더 보자. 저 가지들이 비어 있는 게 아닌, 다음 계절을 이미 붙잡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플래닛 기자 · Breath.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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