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악산 창의문안내소에서 '백악산 한양도성 탐방 안내소 개소식'이 열렸다. 2023년 12월까지 운영되다 멈춰 섰던 안내소가 다시 문을 연 것으로,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참석했다. 오는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국제 회의장의 명분과 도심 고갯길의 실천이 같은 날 하나로 묶였다.
한국이 세계유산위원회를 여는 것은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래 38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20차 특별세션에서 이병현 전 주유네스코 대표부 대사가 제48차 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됐고, 허민 청장이 그 곁을 지켰다. 한국은 이번 회의의 의장국을 맡는다. 등재를 신청하고 심사를 기다리던 나라가, 이번에는 회의를 굴리는 쪽에 앉는다.
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재와 보존·관리를 논의하는 정부 간 회의로, 총회에서 뽑힌 회원국 대표 21개국이 중심이 되어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회의 기간에는 경복궁을 지키던 수문장 100명이 부산으로 내려가 회의장 건물 앞에 선다. 붉은 철릭과 검은 전립, 걸음마다 나는 가죽신 소리가 벡스코 유리벽 아래로 옮겨 가는 셈이 된다. 행사장에는 한국 유산을 알리는 'K-헤리티지 하우스'가 운영된다.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 실험 시연과 조선통신사선 재현선 소개도 준비돼 있다. 신라 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봉분을 흙과 돌로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의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사고본 4종을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도 논의되고 있다. 네 산으로 흩어져 화재와 전란을 피해 온 종이 더미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최종 형태는 확정되지 않았다.
안건도 가볍지 않다. 올해 회의에서는 '한국의 갯벌' 2단계 확장 등재가 다뤄질 예정이다. 허민 청장은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한 발전 같은 현안을 담은 국제 선언문을 끌어내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일본 메이지 산업유산처럼 한일 간 이견이 걸린 유산에 대해서는 등재 당시 조건 이행을 단호히 요구하되, 한일 공동 유산 검토 같은 풀이법도 함께 살피고 있다고 했다.

국제 무대의 언어가 도시의 살갗에 닿는 지점이 한양도성이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경기도·고양시 등과 함께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한양의 수도성곽(Capital Fortifications of Hanyang)' 등재신청서 초안을 냈고, 2027년 등재를 목표로 삼고 있다. 허민 청장은 태조 이성계가 궁궐과 종묘, 사직단을 조성하면서 백악산·남산·낙산·인왕산의 정상과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안내소 재운영이 그 성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성은 박물관 안에 있지 않다. 청와대 복귀 이후 경호를 낮춘 기조에 따라 여섯 개 탐방로가 24시간 열린 것으로 파악되며, 안내소 역시 6개 권역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등재가 이뤄지면 영향 범위가 넓어져 서울의 정비사업 최소 38곳이 그 안에 든다는 집계도 나와 있다. 보존의 명분과 재개발의 일정이 어디서 어긋나는지는 등재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협의 대상이 될 사안이다.
그러니 7월의 부산은 축하 무대이면서 동시에 검증대가 된다. 회의를 여는 나라의 격은 개회식 조명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성벽 옆에 사는 사람들과 어떤 합의를 만들어 냈는가로 읽힌다.
안내소가 다시 문을 연 것은 그 합의를 만들 최소한의 접점을 복원한 일에 가깝다. 탐방객 안내와 순찰, 해설 프로그램, 문화 공연이 이곳에서 이어진다.
창의문 옆 계단에 서면 성돌의 크기가 구간마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쪽 거친 자연석과 위쪽 반듯한 사각 돌 사이에 600년이 끼어 있다. 안내소 문은 오전 9시에 열리고, 부산 벡스코의 개회식은 7월 19일이다. 그 사이 넉 달은 성벽을 직접 짚어볼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