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밥을 짓고, 누가 아픈 사람 곁을 지키는가. 오래된 물음인데 답은 여태 바뀌지 않았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지나간 이번 달, 돌봄과 노동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함께 읽을 책이 있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2017년 문학동네에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제목부터 이 책의 태도를 말한다. 페미니즘을 특정한 사람들의 것으로 좁히지 않고 누구나 들어설 수 있는 문으로 열어 두겠다는 선언이다. 얇고 문장이 평이해 입문서로 읽히지만, 읽고 나면 입문서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벨 훅스는 강단의 언어와 생활의 언어를 갈라 두지 않는다. 개념을 세워 놓고 사례를 끼워 넣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하루에서 시작해 개념으로 올라간다. 이론서에 지친 독자에게 특히 잘 맞는 방식이다.

돌봄은 오래도록 노동으로 세어지지 않았다.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요양보호 같은 제도가 하나씩 생겨났지만 그 제도가 전제하는 '주 돌봄자'는 여전히 대체로 여성이다. 훅스는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적인 사정으로 두지 않고 노동의 문제로 옮겨 놓는다.
이 책의 힘은 대상을 넓힌 데 있다. 여성만의 문제로 가두지 않고 남성 또한 이 질서 안에서 무엇을 잃는지 말한다. 돌보는 능력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이 나중에 누구를 돌볼 수 있겠는가. 이 물음은 복지 정책의 설계에도, 학교 교육의 내용에도 곧바로 닿는다.
얇아지는 곳도 있다.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쓰인 책이라 한국의 돌봄 현실, 이를테면 요양시설과 가족 사이의 부담 배분이나 이주 돌봄노동자의 처지는 이 안에 없다. 통계와 제도를 원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함께 펼쳐야 한다. 훅스가 건네는 것은 무엇이 옳은지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선이다.

비슷한 책들과의 차이도 여기서 갈린다. 여성의 경험을 기록하는 데 힘을 쏟은 책이 많지만, 이 책은 기록보다 설득에 기운다. 반대편에 서 있다고 여기는 사람까지 독자로 상정한다. 읽는 동안 어딘가 불편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이 책이 일하고 있다는 신호다.
돌봄을 노동으로 부르는 말은 공적 문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말이 어디까지 갔는지는 사무실 서류철보다 요양시설 복도의 근무표에서 더 빨리 드러난다. 누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엇을 하는지 적힌 그 종이가 이 책이 하려는 말을 한 장으로 요약해 두고 있다.
집에는 그런 종이가 없다. 저녁 식탁을 치우는 손과 다음 날 아침 도시락을 싸는 손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훅스가 겨냥한 것은 그 빈칸이고, 얇은 책 한 권이 그 빈칸을 계속 가리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