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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돌봄을 노동으로 되돌리는 책

배진경·입력 2026. 03. 17. 오후 1:53:00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다시 펼친 벨 훅스의 입문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묻는 것은 집 안의 노동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묻는 것은 집 안의 노동이다 / ⓒ 브레스저널

누가 밥을 짓고, 누가 아픈 사람 곁을 지키는가. 오래된 물음인데 답은 여태 바뀌지 않았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지나간 이번 달, 돌봄과 노동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함께 읽을 책이 있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2017년 문학동네에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제목부터 이 책의 태도를 말한다. 페미니즘을 특정한 사람들의 것으로 좁히지 않고 누구나 들어설 수 있는 문으로 열어 두겠다는 선언이다. 얇고 문장이 평이해 입문서로 읽히지만, 읽고 나면 입문서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벨 훅스는 강단의 언어와 생활의 언어를 갈라 두지 않는다. 개념을 세워 놓고 사례를 끼워 넣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하루에서 시작해 개념으로 올라간다. 이론서에 지친 독자에게 특히 잘 맞는 방식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 벨 훅스 · 문학동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 벨 훅스 · 문학동네 / 표지 · 문학동네

돌봄은 오래도록 노동으로 세어지지 않았다.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요양보호 같은 제도가 하나씩 생겨났지만 그 제도가 전제하는 '주 돌봄자'는 여전히 대체로 여성이다. 훅스는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적인 사정으로 두지 않고 노동의 문제로 옮겨 놓는다.

이 책의 힘은 대상을 넓힌 데 있다. 여성만의 문제로 가두지 않고 남성 또한 이 질서 안에서 무엇을 잃는지 말한다. 돌보는 능력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이 나중에 누구를 돌볼 수 있겠는가. 이 물음은 복지 정책의 설계에도, 학교 교육의 내용에도 곧바로 닿는다.

얇아지는 곳도 있다.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쓰인 책이라 한국의 돌봄 현실, 이를테면 요양시설과 가족 사이의 부담 배분이나 이주 돌봄노동자의 처지는 이 안에 없다. 통계와 제도를 원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함께 펼쳐야 한다. 훅스가 건네는 것은 무엇이 옳은지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선이다.

돌봄은 시간을 쓰지만 임금으로 세어지지 않는다
돌봄은 시간을 쓰지만 임금으로 세어지지 않는다 / ⓒ 브레스저널

비슷한 책들과의 차이도 여기서 갈린다. 여성의 경험을 기록하는 데 힘을 쏟은 책이 많지만, 이 책은 기록보다 설득에 기운다. 반대편에 서 있다고 여기는 사람까지 독자로 상정한다. 읽는 동안 어딘가 불편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이 책이 일하고 있다는 신호다.

돌봄을 노동으로 부르는 말은 공적 문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말이 어디까지 갔는지는 사무실 서류철보다 요양시설 복도의 근무표에서 더 빨리 드러난다. 누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엇을 하는지 적힌 그 종이가 이 책이 하려는 말을 한 장으로 요약해 두고 있다.

집에는 그런 종이가 없다. 저녁 식탁을 치우는 손과 다음 날 아침 도시락을 싸는 손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훅스가 겨냥한 것은 그 빈칸이고, 얇은 책 한 권이 그 빈칸을 계속 가리키고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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