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도를 설계할 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삼는가. 예산도 기준도 결국 숫자에서 출발한다. 그 통계가 처음부터 절반만 담고 있었다면, 그 위에 세운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 되는가.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 있다. 캐럴라인 크리아도가 쓴 『보이지 않는 여자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2020년 국내에 나왔다. 세상의 기준값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를 파고들며 도시와 노동, 의료와 복지에 이르는 설계의 밑바탕을 훑는다.
읽는 결은 격정적이지 않다. 저자는 분노를 앞세우기보다 빠진 칸을 하나씩 짚어 보이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감정이 아니라 인식이 바뀐다.
이 책이 우리 지면과 만나는 대목은 뚜렷하다. 복지 급여의 대상을 정하고, 돌봄 인력의 노동 강도를 계산하고, 통근 시간을 기준으로 교통망을 짜는 과정은 모두 통계 위에 서 있다. 특정 집단의 생활 패턴만 표준으로 삼은 통계라면,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제도 바깥으로 밀려난다. 시혜의 문제가 아닌 설계의 문제다.
돌봄 노동은 그 공백이 가장 두껍게 쌓이는 영역이다. 집계되지 않는 노동은 예산 편성에서 존재하지 않는 노동이 되고, 존재하지 않는 노동에는 지원 근거도 붙지 않는다. 노동 통계와 복지 통계 사이의 빈칸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한 어조로 반복해 확인시킨다.
교육 현장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무엇을 측정하기로 했는지가 무엇을 지원할지를 결정하고, 측정 항목에 없는 어려움은 학교 안에서도 개인의 사정으로 남는다. 지표를 만드는 사람이 곧 우선순위를 만드는 사람이다.

강점은 성차별을 태도의 영역에서 인프라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는 점이다. 나쁜 의도가 없어도 나쁜 결과가 나온다는 구조적 설명은 이 주제를 처음 접하는 독자의 방어 심리를 덜 자극한다. 여성학 입문서들이 관계와 경험으로 접근했다면 이 책은 통계와 설계도로 접근한다.
한계도 있다. 사례가 넓은 범위에 걸쳐 있어 한국의 제도 지형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번역의 여지가 남는다. 국내 통계 체계에서 어느 항목이 비어 있는지는 독자가 따로 채워 넣어야 할 몫이다. 진단은 선명한데 처방은 얇다.
그럼에도 권할 독자는 분명하다. 지표를 설계하는 공무원과 연구자, 사업 대상을 정해야 하는 복지 현장 실무자, 자신의 경험이 왜 어떤 서류에도 잡히지 않는지 의아했던 사람들이다. 어려운 이론서보다 사례집에 가까워 관심 있는 장부터 펼쳐도 무리가 없다.
지금 바뀌고 있는 것도 있다. 성별 분리 통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학계와 행정 실무 양쪽에서 나오고, 무엇을 세는지부터 다시 보자는 논의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빈칸을 발견하는 일이 곧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
한 줄 평: 통계표의 빈칸이 곧 누군가의 삶의 빈칸임을 설계도의 언어로 증명해 낸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