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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를 다시 계산한다

배진경·입력 2026. 02. 10. 오전 9:32:00
입시와 채용의 계절에 다시 펴 보는 샌델의 능력주의 해부
『공정하다는 착각』은 시험장 바깥의 조건을 함께 본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시험장 바깥의 조건을 함께 본다 / 사진 Theonlysilentbob · CC BY-SA 3.0

합격한 사람은 정말 자기 힘으로 합격했을까. 떨어진 사람은 정말 자기 탓으로 떨어졌을까. 2월의 대학가와 채용 공고판을 지날 때마다 이 물음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베리, 2020)이 파고드는 문제다.

샌델이 겨누는 것은 능력주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돌아가는 체제가 그 자체로 공정하다는 통념이다. 이 책의 초점은 능력주의의 실패보다 능력주의가 성공했다고 믿을 때 생기는 그늘에 놓인다. 논증은 차분하고, 결론은 불편하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자기 성취를 온전히 자기 몫으로 여긴다. 부모의 소득, 태어난 지역, 우연히 만난 교사, 몸이 아프지 않았던 시기. 이런 조건들이 결과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성적표에 기록되지 않는다.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 표지 · 와이즈베리

그래서 승자는 오만해지고, 패자는 자기 자신을 탓한다. 샌델은 소득 격차와 함께, 패자에게 굴욕감이 쌓이는 과정을 파고든다.

이 대목이 한국 독자에게 특히 아프게 읽힌다. 수시와 정시, 공채와 수시 채용,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선 앞에서 우리는 늘 '더 공정한 선발 방식'을 요구해 왔다. 선발 절차를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선발에서 밀려난 사람의 삶이 왜 그렇게까지 나빠져야 하는지에 답하지 못한다.

노동을 다루면서 이 책은 가장 넓어진다. 학위와 자격이 사람의 값을 매기는 척도가 될 때, 그 척도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낮게 취급된다. 돌봄, 운송, 청소, 제조 현장의 일이 필수라고 불리면서도 임금과 존중에서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경험을 우리도 통과했다. 일의 존엄을 사회가 어떻게 배분하는가, 이것이 후반부를 끌고 간다.

같은 관문 앞에 서기까지의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관문 앞에 서기까지의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 ⓒ 브레스저널

이 책은 진단에서 강하고 처방에서 얇아진다.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재정을 어떻게 대며 어떤 저항을 넘을지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논의의 배경도 한국의 입시 제도나 채용 관행에 그대로 대입하면 어긋나는 부분이 생긴다. 통계와 정책 설계로 불평등을 다루는 책들을 함께 읽어야 균형이 잡힌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불평등을 다루는 많은 논의가 분배의 크기에 집중할 때, 샌델은 분배 이전에 작동하는 사회적 평가의 언어를 문제 삼는다. 누가 성공할 자격이 있는지 따지기 전에, 성공하지 못한 삶을 우리가 어떤 말로 부르고 있는지를 되짚게 한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논의는 대개 기회가 얼마나 고르게 열렸는지를 따지는 데서 멈춘다. 샌델은 기회가 완벽하게 고르더라도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언어 자체가 공동체를 갈라놓는다고 본다. 경쟁을 더 공정하게 만드는 개선안과, 경쟁의 결과를 사람의 값으로 환산하는 습관을 의심하는 작업은 다른 일이다. 이 책은 뒤쪽을 택했고, 그 선택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논의들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배진경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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