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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폐허에서 다시 심는 법

페이지·입력 2026. 01. 17. 오전 10:12:00
재난 이후를 상상한 소설이 새해의 복원 서사를 여는 방식
『지구 끝의 온실』이 그리는 재난 이후의 식물과 사람
『지구 끝의 온실』이 그리는 재난 이후의 식물과 사람 / ⓒ 브레스저널

무너진 세계를 다시 세우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기후 위기를 다루는 이야기는 대개 붕괴의 순간에 집중한다. 오래 걸리는 것은 무너진 다음의 시간이다. 김초엽의 장편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 2021)은 그 시간을 정면으로 붙든다.

소설은 재난이 휩쓸고 간 뒤의 지구를 배경으로 식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남는 과정을 따라간다. 파국의 스펙터클보다 회복의 절차에 시선을 둔다. 과학소설의 문법을 쓰면서도 온도는 차갑지 않다. 살아남은 존재들이 서로를 어떻게 붙잡았는지가 이야기의 동력이 된다.

새해 첫 달에 이 책을 다시 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 목표연도가 다가올수록 논의는 감축 수치와 이행 계획으로 좁아진다. 복원은 표에 적히는 값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훼손된 땅에 무엇을 심을지 정하는 사람, 그 식물이 뿌리내릴 때까지 물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 자이언트북스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 자이언트북스 / 표지 · 자이언트북스

소설이 잘 보여 주는 것은 그 노동의 질감이다. 생태 복원은 극적인 전환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관찰과 손질의 축적이다. 종자를 고르고, 토양을 살피고, 실패한 구획을 다시 갈아엎는 일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기후 서사의 흔한 두 갈래는 종말의 공포와 기술적 낙관이다. 앞의 것은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고, 뒤의 것은 문제를 남에게 미룬다. 이 소설은 어느 쪽에도 기대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한 구체적인 돌봄을 통해 복구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강점은 과학적 상상력과 관계의 서사를 억지 없이 겹쳐 놓은 데 있다. 식물의 생리와 확산이라는 물질적 조건을 서사의 뼈대로 삼되, 그 조건을 다루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따라간다. 기술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도, 사람이 기술을 이기는 이야기도 아니다. 둘은 같은 작업대 위에 놓인다.

복원은 한 그루가 아니라 이어진 뿌리에서 시작된다
복원은 한 그루가 아닌 이어진 뿌리에서 시작된다 / ⓒ 브레스저널

얇아지는 대목도 있다. 재난 이후 사회의 제도와 자원 배분, 회복의 비용을 누가 감당했는지에 대한 서술은 성글다. 정책 문서를 읽듯 실행 모델을 찾는 독자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의 목표가 처음부터 그쪽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복원의 정치경제를 궁금해하는 이에게는 다른 책이 한 권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기후 논의에 지친 사람에게 유효하다. 배출량 그래프와 목표연도만 들여다보다 무력해진 실무자, 환경 수업에서 나쁜 소식만 배운 학생,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미뤄 둔 독자에게 권한다. 오늘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고르자면, 집이나 사무실 근처에서 방치된 화단이나 자투리 땅을 한 곳 정해 두고 무엇이 자라는지 계절 동안 지켜보는 것이다. 관찰이 시작되면 손이 따라간다.

한 줄 평: 무너진 뒤를 상상하는 힘이 결국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라고 알려 주는 소설

페이지 기자 · Breath.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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