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가 더 커지지 않을 때, 사람과 기업과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새해 전망 자료가 쏟아지는 1월에는 성장률 소수점 뒤가 논쟁의 중심에 놓인다. 그 소수점이 오르내리는 것과 별개로, 전체 크기가 늘지 않는 상태가 상수가 되면 경제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뀐다. 홍성국의 『수축사회』(메디치미디어, 2018)는 그 상태에 이름을 붙인 책이다.
제목이 곧 개념이다. 저자는 팽창을 전제로 짜인 제도와 습관이 팽창이 멈춘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을 수축사회로 부른다. 출간은 2018년, 지금으로부터 여덟 해 전이다. 서술은 특정 분기의 지표를 좇기보다 제도와 인구와 부채가 서로 어떻게 얽혀 돌아가는지를 따라간다.
책의 결은 경기 예측서와 다르다. 예측서는 다음 해 성장률과 금리 경로를 말하고 끝나지만, 이 책은 그 수치가 낮은 상태로 굳었을 때 사회 각 부문이 어떤 행동을 택하는지를 설명한다. 확장기에는 서로 다른 이해가 성장분으로 조정되지만, 수축기에는 같은 크기를 나누는 문제로 바뀐다. 갈등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이 지점은 산업 취재의 관심사와 곧바로 만난다. 산업 전환은 새 시장을 여는 일이면서 동시에 기존 설비와 일자리를 정리하는 일이다. 전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는 파이가 커질 때와 커지지 않을 때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자산 가격 상승이 모든 참여자를 태워 주던 국면과 그렇지 않은 국면에서 위험의 분포가 달라진다.

ESG 논의를 읽을 때도 이 틀은 쓸모가 있다. 배출을 줄이는 일과 매출을 늘리는 일이 함께 굴러가던 시기가 지나면, 두 목표는 자원 배분을 두고 경쟁한다. 기업 공시에 담긴 감축 목표를 볼 때 실행 재원의 출처를 함께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힘은 시야의 넓이에 있다. 인구, 부채, 기술, 국제 질서를 하나의 상태 진단 아래 묶어 두었기 때문에 개별 뉴스를 따로 읽을 때보다 연결이 잘 보인다. 저성장을 다룬 책들이 대개 원인 분석이나 정책 처방 한쪽으로 기우는 데 비해, 이 책은 '이미 그 상태에 들어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진단이 먼저이고 처방은 그 뒤다.
얇아지는 데도 있다. 넓게 펼친 만큼 각 부문의 설명은 깊이 파고들기보다 어디에 놓이는지를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특정 산업의 전환 경로를 수치로 따져야 하는 독자라면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고, 부문별 자료를 따로 붙여야 한다.
2018년에 쓰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 뒤 팬데믹과 공급망 재편을 거치며 바뀐 조건은 독자가 스스로 갱신하며 읽어야 한다.
여덟 해 전에 쓰인 책을 지금 펼치는 값은 저자가 무엇을 맞혔는지 채점하는 데 있지 않고, 그가 세운 좌표가 지금 조건에서도 버티는지 대조하는 데 있다. 성장률 소수점을 확인하기 전에 그 소수점이 무엇을 결정하는지 알려 주는 쪽에 가깝다. 인구와 부채, 기술과 국제 질서를 각각 다룬 책들이 흩어져 꽂힌 서가에서, 이 책은 그 사이를 거치는 표지판 하나로 놓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