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잎을 버린 나무가 더 바쁘다

편집부·입력 2026. 06. 14. 오후 2:51:00
흰 들판에 선 두 그루와 하늘을 비스듬히 가로지른 가는 선 한 줄
서 있는 나무를 그대로 두는 일
서 있는 나무를 그대로 두는 일 / 사진 Mr Dr3igeteilt · Pexels

맨가지 두 그루가 흰 들판 위로 크게 벌어져 있다. 잎은 하나도 없다. 하늘은 눈이 다시 내리기 직전처럼 젖빛으로 낮고, 그 회백색과 눈밭의 흰색은 나무 밑동을 두른 덤불 선에서만 겨우 나뉜다. 눈은 얕게 덮였고 마른 풀이 붉은 침처럼 여기저기 삐져나온다.

겨울나무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정직하게 살아 있다. 잎을 떨궈 물을 아끼고, 얼어붙은 흙 아래에서 뿌리는 다음 계절 몫을 챙긴다. 도시가 난방을 한껏 올리는 계절에 이 나무들은 최소한으로 버티는 쪽을 택했다.

왼쪽 가장자리를 다시 본다. 가느다란 선 하나가 하늘을 비스듬히 가로지른다. 전선이다. 그 아래 나무는 윗동이 꺾인 채 서 있고, 두 가지가 함께 이 들판이 사람의 생활권 안쪽이라는 표시가 된다.

그래서 이 겨울은 우리 쪽 일이 된다. 새로 심는 것보다 서 있는 나무를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싸고 빠르다. 마른 풀을 태우지 않는 것, 덤불 선을 밀어내지 않는 것, 그런 선택이 봄에 잎으로 돌아온다.

덤불 선 아래쪽, 두 밑동 사이가 유독 검다. 눈이 얕게 얹히지 못한 그 그늘에 짐승이 지나간 자국인지 발자국 몇 개가 파여 있고, 그 곁으로 마른 줄기들이 한쪽으로 눕혀져 있다. 사람의 전선만 이 들판을 통과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장 어두워 보이는 곳이 실은 겨울 내내 가장 붐빈 통로였다.

흰 바탕에 점점이 박힌 붉은 풀 끝을 한 번 더 보라.

편집부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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