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산 뒤로 내려가는 시간, 하늘은 주황에서 청회색으로 번지고 구름은 길게 누웠다. 그 아래 들판은 여름으로 넘어가는 초록을 그대로 지녔고, 논둑이 만든 선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진다. 흰 기둥 하나가 화면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르며 서 있고, 그 뒤로 같은 기둥들이 안개 낀 산자락까지 줄지어 멀어진다.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크기지만, 오래 보면 좁음이 보인다. 날개는 하늘을 넓게 쓰는데 기둥이 딛고 선 땅은 원 하나 크기다. 그 원 바깥으로는 여전히 논이고 밭이고 흙길이다. 농사와 발전이 같은 지도 위에 함께 놓여 있다.
발전소를 떠올릴 때 우리는 보통 굴뚝과 담장을 함께 떠올린다. 여기에는 담장이 없다. 연료를 실어 오는 길도, 태우고 남은 것을 내보내는 길도 필요 없다. 하늘을 지나가던 바람이 지나가는 김에 힘을 내려놓고 갈 뿐이다.
이런 풍경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어디에 세울지, 누구의 땅을 지나갈지, 전기를 어디로 보낼지를 사람들이 앉아서 정한 결과다. 논이 초록인 채로 남을지 아닐지도 마찬가지로 지금 정해지는 중이다.
화면 오른쪽 끝, 논둑에 반쯤 걸쳐 파란 물통 하나가 엎어져 있다. 곁에는 접은 삽자루가 흙에 박힌 채로 서 있고, 물길을 여닫는 작은 손잡이도 함께 잡힌다. 저 커다란 흰 것이 바람을 받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매일 저 통을 들고 물을 대러 왔다는 뜻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이 한 저녁을 나눠 쓴다.
사진을 다시 보면 길이 보인다. 흰 콘크리트 길이 논 사이를 지나 기둥 아래까지 닿아 있고, 그 길은 화면 밖으로 계속 이어진다. 누군가 그 길을 내러 갔기 때문에 이 저녁이 이렇게 찍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