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 한국과 일본의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마주 앉았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들이 마련한 한·일 동료지원 국제세미나였다. 일본 당사자 단체 '포르케' 활동가와 '전국정신병자 집단' 관계자 등 일본 측 참석자는 11명이었다.
발표에 나선 사람은 두 명이다. 한국동료지원인협회 이한결 준비위원장, 그리고 일본 도쿄도 자립지원협의회 사사키 리에 부회장. 사사키 부회장은 도쿄대병원 정신신경과에서 피어 서포트 워커로 일하며, 본인이 강제입원을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입원을 받는 쪽에 있던 사람이 지금은 입원하는 사람 옆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이런 인력을 갖추기까지는 30년 가까이 걸렸다. 1990년대 이후 장기 입원을 줄이고 지역사회 생활로 옮겨가는 일이 국가적 과제로 굳어졌고, 1998년 첫 정신장애인 동료지원 센터가 문을 열었다. 2000년 무렵부터는 당사자가 복지 사업소 직원으로 채용되거나, 당사자가 직접 운영하는 장애복지 서비스 사업소가 하나둘 늘었다.
결정적 변화는 최근 5년 안에 있었다. 2020년 '장애인 피어 서포트 연수 사업'이 후생노동성 사업으로 지정되면서 양성 과정에 국가의 이름이 붙었고, 이듬해 장애복지서비스 보수 개정에서 동료지원 가산과 실시 가산이 인정됐다. 곁을 지키는 일에 값이 매겨진 것이다. 돌봄이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그때 만들어졌다.
한국은 서울시의회 조례에 기대어 서 있다. 조례에 근거한 동료지원센터는 세 곳. 대신 그 조례에는 눈에 띄는 조항이 있다. 센터장이 정신장애 당사자여야 하고, 의사결정 기구의 과반을 당사자로 채우도록 못 박았다.
이 세 곳을 중심으로 약 2000명의 동료지원인이 움직인다. 입·퇴원 절차를 함께 밟아주는 절차조력, 지원주택 안내와 연결, 정신의료기관 안에서의 프로그램 운영이 이들의 일이다. 활동의 법적 기반을 어디까지 넓힐지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같은 주에 다른 종류의 소식도 나왔다.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겪은 사람이 퇴원 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또 다른 폐쇄적 생활시설로 옮겨가면, 바깥에서 그 사람의 의사와 상태를 확인할 길이 사실상 끊긴다는 지적이다. 한 대리인이 소재를 물었을 때 정신병원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요양원은 보호자가 면회를 금지했다고, 행정기관은 업무 범위 밖이라고 답했다. 이 사건은 종결되지 않았고, 대리인 측은 법원에 도움을 청하는 절차를 살펴보고 있다.
동네 단위의 시도도 이어진다. 진천군정신건강복지센터는 21일부터 28일 사이 관내 아파트 세 곳과 협약을 맺는다. 덕산주공, 광혜원LH2단지, 충북혁신도시센텀클래스가 대상이다.
마음건강 검진과 인식개선 캠페인, 이동상담실을 단지 안으로 들여보내고, 도움이 필요한 주민에게는 진료 연계와 치료비 안내, 심리상담, 사례관리를 잇는다는 계획이다. 제주에서도 성산읍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제주특별자치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손을 잡았다.
[일러스트: 아파트 단지 놀이터 옆에 접이식 탁자와 의자 두 개가 놓인 이동상담실 풍경, 사람 몇이 멀찍이 오가는 한적한 오후 | 캡션: 상담실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는 방식]
일본의 30년과 한국의 세 곳 사이에는 제도의 두께 차이가 있다. 국가 사업으로 지정되고 보수 체계에 반영된 쪽과, 지방의회 조례 한 편에 근거를 둔 쪽은 다음 걸음의 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세미나가 마련된 문제의식도 그 지점에 닿아 있었다. 병원과 시설이 지원의 중심에 있고, 동네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얇으며, 정책을 당사자가 주도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진천군의 협약 기간은 28일 끝난다. 그 뒤 단지에 이동상담실이 몇 번 서고, 거기 누가 찾아와 앉는지가 이 시도의 실제 크기를 말해줄 것이다. 사사키 부회장이 병원 진료과 안에서 일하는 것처럼, 한국의 동료지원인 2000명도 병실과 동네 사이 어딘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갇혀 있던 사람이 곁을 지키는 사람으로 옮겨 갈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 지금 확인된 것은 그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