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나무 창틀이 화면을 가로로 가른다. 흐린 오후의 빛이 유리에 얇게 얹혀 색을 한 겹 죽여 놓았고, 창밖에는 젖은 초록의 풀숲과 삭은 말뚝 울타리, 전봇대 하나와 늘어진 전선이 걸려 있다. 아래쪽에 조금 걸친 붉은 좌석은 오래 앉아 닳은 티가 난다.
이런 칸에 앉으면 어깨가 한 뼘쯤 내려간다. 창틀에 팔꿈치를 얹으면 미지근한 나무 결이 닿고, 발바닥으로는 바닥의 잔진동이 올라온다. 숨은 굳이 고르지 않아도 창밖 초록을 따라 조금 길어진다.
그런데 눈은 자꾸 무언가를 붙잡으려 한다. 지나가는 지붕, 울타리의 끊긴 부분, 멀리 흐릿한 마을. 이름을 붙이고 기억해 두려는 습관이 쉬는 시간에도 일한다.
삼 분만 초점을 풀어 두면 어떨까. 한 점을 좇는 대신 창유리 전체를 멍하니 두면, 풍경은 눈에 맺히지 않고 옆으로 미끄러진다. 놓친 것을 세지 않고 그냥 보내 보는 것도 괜찮다.
기차는 계속 가고, 창은 잠깐 비었다가 다시 초록으로 채워진다.
리커버리 기자 · Breath.Soci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