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촛농이 흘러내리는 저녁

배진경·입력 2026. 05. 07. 오후 5:57:00
흔들리는 불꽃 하나를 오래 바라보는 삼 분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밤이 있다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밤이 있다 / 사진 Nothing Ahead · Pexels

어두운 방에 초 세 자루가 서 있다. 빛이 닿는 데까지만 벽이 드러나고, 낡은 종이가 발린 표면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가 가장자리에서 검게 잠긴다. 촛농은 굳어버린 자국과 미지근하게 흐르는 줄기로 나뉘어 내려왔고, 바닥의 얼룩은 여러 번의 밤이 지나간 흔적처럼 보인다.

이런 빛을 마주하면 눈이 알아서 초점을 좁힌다. 밝은 것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흐릿해지니, 눈꺼풀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린다. 어깨가 조금 내려가고 들숨이 짧아지는 대신 날숨이 길어진다. 손은 무릎 위에 그냥 놓여 있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확인하느라 시선이 계속 옮겨 다녔다면, 지금 마음은 한 곳에 머무는 법을 잠시 잊은 상태에 가깝다.

불을 하나 켜두고 삼 분만 불꽃 끝을 봐도 된다. 심지가 기울고 빛이 옆으로 눕다가 다시 곧게 서는 그 움직임만 눈으로 따라가면 된다. 숨을 세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정하지 않아도 된다.

초를 켜지 않는 시간에도 비슷한 것을 해볼 수는 있다. 이를테면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주전자 옆에 서 있는 몇 분. 김이 오르는 걸 보는 동안 배가 어디까지 부풀었다가 어디까지 꺼지는지, 그 오르내림의 폭만 가만히 헤아려도 좋겠다. 커지는지 작아지는지 따지지 않고, 지금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리면 그만이다.

불꽃은 흔들리는 동안에도 계속 타고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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