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변전소 약 500개소의 남는 땅에 태양광 발전설비 95MW를 짓는 계획이 나왔다. 한국전력이 2030년까지의 일정으로 어제 발표한 내용이다. 대상은 변전소를 지으면서 생긴 잔여지와 조경부지, 경계의 자투리땅이다. 산을 깎거나 논을 메우는 절차 없이, 전기가 오가는 부지 위에 발전설비를 얹는 방식이다.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대안이 수정가결됐다. 농작물을 기르면서 태양에너지를 함께 생산하는 활동을 법으로 정의한 첫 사례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대안을 의결한 뒤 넘어온 안건이다. 본회의 처리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두 소식이 겹친 날짜는 우연이지만, 겨냥하는 문제는 하나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가장 크게 걸리는 것이 발전 기술도 단가도 아닌 땅이라는 점이다. 부지를 새로 확보하려 할 때마다 인허가와 지역 협의가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업이 통째로 멈추는 일이 반복돼 왔다. 그래서 기존에 쓰이던 공간을 겹쳐 쓰자는 접근이 제도로 올라오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그동안 농지법과 발전사업 허가 체계 사이에 끼어 뚜렷한 법적 지위가 없었다. 이번 법안은 다른 법률보다 우선 적용되는 독립 법체계를 두고, 사업 주체를 농업인과 주민참여협동조합, 농업법인으로 제한했다. 외부 자본이 농지를 발전 부지로만 소비하는 사태를 막으려는 설계다. 주민참여협동조합은 수익 일부를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도록 했고, 환원 비율은 하위 규정으로 넘겨졌다.
규제 쪽도 함께 들어갔다. 발전사업 허가 과정에서 주민 의견수렴이 의무가 되고, 시장·군수·구청장은 부지면적과 발전용량 등 사업 규모를 제한하거나 조건을 붙일 수 있다. 영농 의무와 적합 작물 재배 의무를 명시해, 농사를 짓지 않으면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따른다. 발전을 명분으로 경작이 형해화되는 일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한전 계획은 규모보다 순서가 눈에 띈다. 전담 조직을 꾸려 올해 1MW 시범사업을 돌린 뒤 2030년까지 95MW를 채우는 단계적 방식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이 사업으로 공공부문 K-RE100의 대표 성공 사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송변전 유휴자산 에너지화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를 넓히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제도 개선 협의도 함께 진행 중이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는 현행 절차에 있다. 원상복구가 가능하고 토지 형질을 바꾸지 않는 재생에너지 시설에도 개발행위허가가 요구된다. 몇 달이 걸리는 이 절차가 소규모 설비마다 붙으면, 자투리땅 500곳을 채우는 일은 행정 작업만으로 임기 하나를 넘긴다. 유휴부지 전략의 성패는 패널 값보다 서류의 길이에 달려 있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와 태양광 전기 kWh당 80원대라는 목표를 내걸고 RE100 산업단지, 재생에너지 메가특구를 함께 제시한 상태다. 95MW는 그 총량에서 큰 비중은 아니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갈등 없이 늘릴 수 있는 발전량이 어디까지인지를 실측하는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출범한 한국재생에너지단체총연합회가 재생에너지 특별법 제정과 인허가·전력거래 규제 재설계를 요구한 배경도 같다.
유휴부지 전략을 낙관만 하기는 이르다. 자투리땅은 형태가 제각각이고 그늘도 많아 개소당 효율은 넓은 평지만 못하다. 영농형 역시 패널 아래에서 수확량이 얼마나 유지되는지가 관건이며, 시행령이 정할 다년생 식물의 범위에 따라 실제 적용 폭이 갈린다. 두 사업 모두 첫 해의 시범 결과가 다음을 정한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확인할 곳이 있다. 지자체가 공고하는 발전사업 허가와 주민 의견수렴 절차는 시·군·구 누리집에 올라오고, 영농형 법안이 시행되면 이 창구가 사업 규모를 조정하는 실질적 통로가 된다. 반대할 일이 생기면 반대하고, 조합에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조건을 따져 보는 것. 재생에너지를 어디에 세울지는 결국 그 땅 옆에 사는 사람들이 정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