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100GW의 관문은 발전기가 아니다

플래닛·입력 2026. 04. 30. 오전 9:23:00
전력망·계획·시장 삼중 병목, 스페인 정전이 남긴 교훈
발전 설비는 늘었지만 전기가 지나갈 길은 그만큼 넓어지지 않았다
발전 설비는 늘었지만 전기가 지나갈 길은 그만큼 넓어지지 않았다 / ⓒ 브레스저널

광주·전남에서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도 송전망이 모자라 상업운전에 들어가지 못한 물량이 약 1.5GW에 이른다. 발전기는 세워졌는데 전기가 흘러갈 길이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실제 관문은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의 개수보다 전력망과 계획, 시장이라는 세 겹의 병목에 있다는 지적이 30일 잇따라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이날 국내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전환 정책을 평가하고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설비는 빠르게 늘었으나 전력망 확충이 그 뒤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계통에 붙지 못해 기다리는 물량과 계통에 연결된 설비의 출력을 강제로 줄이는 조치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쪽에서는 못 붙어서 못 팔고, 다른 쪽에서는 붙어 있는데도 못 파는 상황이 겹친 것이다.

뿌리는 지리에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는 호남과 제주에 몰려 있는 반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수도권이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지도 위에서 어긋나 있으니, 그 사이를 이어 주는 선로가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발전기를 세워도 전기는 갈 곳을 잃는다.

계획들 사이의 박자도 어긋난다.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5년 단위로,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 단위로 만들어지고 고쳐진다. 주기가 다른 두 계획이 서로 다른 시점을 바라보다 보니 목표 수치부터 흔들린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만 해도 2021년 10월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의 30.2%에서 2023년 1월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1.6%로 낮아졌다.

보고서가 내놓은 해법은 발전소를 더 짓자는 쪽이 아니다. 지역별로 계통이 실제 받아낼 수 있는 용량을 계산한 뒤 거기에 맞춰 보급 목표를 정하자는 것, 그리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가상발전소(VPP) 같은 유연성 자원을 묶어 전력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계획으로 다루자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손대는 작업이 시작됐다. 한국전력은 실제 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서 접속 순번만 잡고 있던 이른바 허수 사업자를 정리해 광주·전남에서 약 1.4GW의 접속 용량을 확보했고, 이 가운데 1.2GW가량을 다른 사업자에게 다시 나눠줬다. 같은 지역에는 2025년 1차 사업으로 523MW 규모의 ESS 구축이 확정됐고, 525MW를 더 확보하기 위한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계통 여건이 나쁜 지역에 ESS 설치비를 최대 90%까지 지원하는 방안도 밀고 있다.

생산지는 남서쪽, 소비지는 수도권. 그 사이를 잇는 선이 관건이다
생산지는 남서쪽, 소비지는 수도권. 그 사이를 거치는 선이 관건이다 / ⓒ 브레스저널

전력망을 누가 감시할 것인가도 쟁점으로 올라왔다. 전기위원회는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전력거래소·에너지전환포럼과 함께 재생에너지 100GW 시대의 전력규제 거버넌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전력망 감독과 시장 감시를 독립적·중립적으로 맡을 전력감독원을 새로 두자는 제안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고, 소비자 보호와 데이터 통합까지 역할로 거론됐다. 전력거래소 회원사가 2001년 19개에서 7000개 이상으로 불어나고 장외거래인 한전 PPA가 18만 건 수준에 이른 현실이 배경으로 깔린다.

바다 건너에도 참고할 사례가 있다. 지난해 스페인에서 전국 규모의 정전이 일어나 철도가 멈추고 공항과 산업시설 가동에 차질이 빚어졌으며, 일부 지역은 몇 시간 동안 전기가 끊겼다. 재생에너지 탓이라는 해석이 한동안 돌았지만, 지난 28일 현지에서 나온 보도는 원인을 전력망 운영 문제로 짚었다. 스페인은 2024년 기준 전체 전력 생산의 약 55%를 재생에너지로 채운 나라다.

같은 결론이 두 곳에서 나온 뜻이다.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지었는가보다 그것을 받아낼 망과 운영 체계를 얼마나 다듬었는가가 시스템의 안정성을 가른다. 그래서 100GW라는 목표는 발전 사업자만의 과제가 아니다.

시민이 끼어들 통로도 준비되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 이상으로 올리면서 약 1000만명이 에너지 소득에 참여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마을 유휴부지에 300~1000kW 규모 태양광을 짓는 햇빛소득마을은 올해 전국 500곳 이상 선정을 목표로 공모가 진행 중이고, 풍력을 활용한 바람소득과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이 투자해 수익을 나누는 계통소득도 추진되고 있다.

송전탑은 늘 남의 동네 일이었다. 계통소득은 그 선로를 지역의 자산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다. 사는 마을에 이런 공모가 열려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에서 전력망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플래닛 기자 · Breath.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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