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산청이 4월 10일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100일 전을 맞아 공식 홍보 영상과 포스터를 공개했다. 회의는 오는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같은 날 부산시는 광안대교 미디어파사드와 버스 안내기에 행사 메시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축제의 서막이 켜진 날, 정작 한국의 가장 새로운 세계유산은 물밑에 있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해 7월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등재 이후에도 이 바위는 반복해 잠긴다. 물이 빠지고 나면 젖은 사암 표면에 미세한 흙이 얇게 앉고, 새겨진 선들은 그만큼씩 흐려진다.
그 선들이 무엇인지 알면 잠김의 뜻이 달라진다. 귀신고래와 혹등고래, 긴수염고래가 새겨져 있고 사냥과 인양, 해체에 이르는 과정이 순서대로 남아 있다. 함께 세계유산을 이루는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는 선사시대의 문양과 신라 사람들이 남긴 글자가 한 바위 위에 겹쳐 있다. 수천 년을 견딘 표면이 사람이 만든 물 때문에 계절마다 흔들린다.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뒤 한국이 위원회를 직접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파악된다. 공식 상징은 3월 25일 공개됐고, 종묘 정전의 기와지붕 곡선을 담았다. 공식 행사 연출은 원일 총감독이 맡는다. 국가무형유산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자 2019년 전국체육대회 총감독,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월드뮤직페스티벌 예술감독을 지낸 인물이다.
홍보는 촘촘하다. 포스터는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과 용산역, 구 서울역사 등 19곳에 걸린다. 4월 14일부터는 한국의 세계유산 17건을 소개하는 영상이 순차로 공개된다. 앞서 나온 영상에는 수원 화성과 제주 화산섬·용암동굴, 이탈리아 아그리젠토 고고 지구가 이어 붙었다.

영상에 등장한 그 제주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경면 고산1리 한장동마을 2가구가 비닐 연동하우스를 세우고 만감류 묘목을 심었다는 이유로 5월 말까지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우스와 묘목은 2년 전에 조성된 것이다. 이행하지 않으면 고발로 이어진다.
이 땅은 국가 사적 '제주 고산리 유적'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가운데 규제가 가장 센 1구역이다. 집을 짓는 일도, 시설하우스를 놓는 일도, 나무를 심는 일도 문화유산위원회 개별심의를 거쳐야 한다. 주민들은 이 농지의 객토가 1970년대에 끝났다고 말한다. 유물이 처음 나온 해는 1984년이다.
한경면 서부권은 지정 구역이 겹쳐 쌓인 땅이다. 고산리 유적과 세계지질공원이자 천연기념물인 수월봉 화산쇄설층, 차귀도,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지, 산양 곶자왈이 모여 있고 세계유산구역과 문화재 보호구역, 제주특별법상 절대보전지역이 포개져 있다. 제주고산농협 관할 지역 인구는 영어교육도시와 붙은 산양리를 빼면 줄고 있다. 서귀포 성읍마을에서도 지정구역과 허용기준을 손보는 예고가 3월에 나왔다.
보존은 선을 긋는 일이고, 선 안쪽에는 늘 누군가의 생활이 들어 있다. 울산에서는 물이 유산을 덮고, 제주에서는 유산이 밭을 덮는다. 침수 대책의 공정과 철거 명령을 둘러싼 두 지자체의 처리 방침은 확정되지 않았다. 7월 부산 회의가 성공한 축제로 기록되려면 이 두 장면이 홍보 영상 바깥에 남아서는 곤란하다.
4월 14일부터 공개되는 17건의 영상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가 어떤 얼굴로 나오는지 확인해볼 만하다. 물이 빠진 날의 바위 표면인지, 물에 잠긴 날의 수면인지. 겨울과 봄 사이 반구천을 직접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젖었다 마른 바위에서는 흙냄새가 아주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