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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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는 바람에 어디부터 흔들릴까?

배진경·Published 2026-10-20 12:00 KST
바람은 이삭 끝을 건드리고, 땅에 박힌 밑동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기울었다 일어서는 한 번을 센다
기울었다 일어서는 한 번을 센다 / 사진 https://kaboompics.com/ · Pexels

흐린 하늘이 사진 위쪽 절반을 젖은 회색 종이처럼 덮었다. 아래로는 볕에 바랜 밀짚 빛 억새가 화면 끝까지 빼곡하고, 그 틈마다 늦게까지 버틴 초록 잎이 칼날처럼 비스듬히 솟았다. 왼쪽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이삭 하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뒤편 언덕엔 소나무 숲이 어둡게 깔렸고, 노랗게 물든 나무 몇 그루가 안개 낀 듯 번진다. 그림자 하나 없는 한낮이다.

이런 강가에 서면 찬 공기가 콧속을 서늘하게 훑고 내려간다. 어깨는 저도 모르게 귀 쪽으로 반 뼘쯤 올라붙는다. 눈은 이삭 하나에 머물지 못하고, 잎들이 한꺼번에 오른쪽으로 쏠렸다 돌아올 때마다 초점도 같이 미끄러진다.

흔들리는 걸 보면 붙잡고 싶어진다. 시선으로라도 붙들어 두려는 마음이 어깨를 끌어올린 힘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면 바람이 건드리는 곳은 늘 이삭 끝이다. 깃털 같은 끝이 한 박자 일찍 기울고, 잎이 뒤따르고, 땅에 박힌 밑동은 거의 꿈쩍하지 않는다.

오늘은 흔들리는 것 하나만 골라 바람이 지나가는 걸 지켜볼 만하다. 강가가 멀다면 창밖 나뭇가지 끝이나 베란다에 걸린 수건 한 장으로도 된다. 끝이 기울었다 일어서면 그걸 한 번으로 치고, 그 한 번 동안 숨을 길게 내보낸다. 몇 번이었는지 기억할 필요는 없다.

저녁 퇴근길, 버스가 신호에 멈춘 사이 가로수 꼭대기 잎을 같은 식으로 따라가 볼 수도 있다. 그때는 턱을 살핀다. 어금니끼리 닿아 있는지, 바람이 한 번 지나간 뒤에도 그대로인지만 본다.

언덕 아래 회색 물빛 쪽으로, 마른 이삭들은 오늘도 몇 번이고 기울었다가 다시 선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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